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보석심문 기일을 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미결수용복이 아닌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그가 법원에 온 것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이후 이날이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약 14분에 걸쳐 A4 용지 1장이 넘는 분량의 발언을 이어나갔다.
양 전 대법원장은 “한 수용자가 자신들은 법원에서 재판받고 있어서 법원을 하늘같이 생각하는데 검찰은 법원을 꼼짝 못하게 하고,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며 구치소에서 겪은 일화를 얘기했다.
이어 “검찰이 목표의식에 불타는 수십 명의 검사를 동원해 우리 법원을 이 잡듯이 샅샅이 뒤져서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나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고 검찰을 비꼬았다.
또 “조사를 받으며 검찰이 우리 법원의 재판에 관해 이렇게 이해를 잘 못 하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고 무에서 무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을 향해 훈화하는 듯한 발언도 이어나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정의의 여신상에는 형평이라는 저울이 손에 들려있다”며 “형평성 없는 재판은 정의가 실현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방대한 검찰 자료의 내용도 잘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과연 형평과 공평에 부합하냐”며 “재판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실체적 진실 구현에 합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또 “보석 심사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면서도 “공평과 형평이라는 형사소송법 이념이 지배하는 법정이 되고, 그 안에서 실체적 진실이 발견되고 형사소송 원칙과 이념이 구현되는, 그럼으로써 정의가 실현되는 법정이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시선은 발언 내내 사법연수원 24기 후배인 박남천 부장판사를 향했다.
재판부는 1시간여에 걸친 보석심문 내용과 제출된 자료들을 검토해 보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및 법관 인사 불이익 등 사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개입 및 지시한 혐의 등 40여 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검찰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사건 관련 재판 지연 방안, 전원합의체 회부 등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하고 재판 계획을 전범기업 측 변호사, 외교부 등에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사법부에 비판적인 법관에 대해 인사 관련 문건을 작성하고 인사 불이익을 주고 국제인권법연구회, 인사모 등의 와해를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고, 상고법원 도입 등에 반대하는 대한변협 회장을 압박한 정황도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