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신발 끈을 다시 매며

입력 2019-02-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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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前 지식경제부 차관

삶의 여정은 대나무의 마디처럼 매듭과 매듭으로 이어져 있는가 보다. 7년 전 정들었던 정부과천청사를 떠날 때는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더 깊이 삶과 실천에 대한 성찰을 하고자 신발끈을 다시 매고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 순례를 마치며 이 길을 걷기로 한 것이 일생의 가장 잘한 선택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할 만큼 나름의 깨달음을 안고 돌아왔다. 비록 이러한 유형의 느낌은 시간이 지나면 거의 다 잊혀지고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삶의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여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루 30km를 걷다 보면 마지막 5km에서 지치고 힘들지만, 그때의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다음 날의 도전을 할 수 있다. 이처럼 공직자로서 살아온 여정은 주어진 임무를 처리하고 해결하는 노력을 통해 의미와 보람을 찾는 시간들이었다.

“설거지를 하는 사람만이 그릇도 깬다”고 강조하셨던 공직 선배가 계셨다. 그릇 깰 것을 두려워하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업무에 임했다.

2003년 부안에서의 어려움을 딛고 그 후 2년여에 걸쳐 오래된 미해결 국책과제인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2013년 ‘원전비리’라고 이름 붙여진 한국수력원자력의 사장이 되어 3년에 걸친 노력으로 회사를 정상화한 것도 그에 따른 부작용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 대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무한 책임을 지는 것이 공직자의 숙명이기에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결론을 이유로 비난과 나쁜 평가를 받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비난이 두려워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원자력에 대한 생각이 다를지라도 원전을 운영하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건설하는 것은 우리의 후세대에 대한 책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까지 19년 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처분장 부지 선정을 위해 할 일을 했다고 지금도 자부한다. 논란이 많은 이슈라 해서, 그래서 아차 하면 그릇을 깰 수 있다 해서 모두가 피한다면 부엌에는 설거지가 그냥 쌓여 있을 테니까.

공직의 길은 인간과 우리 공동체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안고 걷는 길이다. 처음 시작할 때의 동기나 꿈은 다 다를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걸을 수 없고 걷다 보면 저절로 사랑이 생기는 아름다운 길이다. 길을 어느 정도 가면 문이 나오고 그 문이라는 매듭을 거쳐 또 다른 길을 만난다. 같이 걷는 이를 바라보고 웃어주고 힘내라고 격려하며 걸어간다. 비록 걸음걸음은 각자 자신의 힘으로 내딛어야 하지만 함께하기에 즐겁고 기쁘게 걸을 수가 있다.

같이 걷다 보면 개인 개인이 얼마나 다르게 생겨먹은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한 다름마저도 감싸안고 서로가 서로를 고쳐나가면서 느끼는 동질감이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다르다는 이유로 같이 걷기를 거부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밀어낸다면 종국에는 내 옆에 같이 걷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외로운 길이 되고야 만다.

길을 걷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맑은 날도 있고 비오는 날도 있고, 추운 날도 더운 날도 있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설거짓감을 하나하나 깨끗이 씻어 내듯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한 고비 한 고비 넘어 가는 것이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그렇게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는 정도가 아니라 깨진 그릇 때문에 내 손에 피를 흘리는 상처를 입는다면 그래도 설거지를 해야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때는 웃으며 이렇게 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그것까지가 우리의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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