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5월 서울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상가에 등장한 국내 최초의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동네 구멍가게들만 있던 시절에 깨끗한 인테리어, 젊고 친절한 직원, 24시간 영업 등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당시 무자료 거래가 성행하던 동네 구멍가게와 달리 편의점은 포스(POS) 시스템 도입으로 영수증을 발행해 투명한 상거래를 선도하는 순기능까지 가능해지면서 정부도 환영했다.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선입선출 및 재고관리, 위생 시스템 등 선진유통기법이 적용돼 만족도가 높았다.
이런 장점들과 더불어 커피전문점이나 베이커리 등과 달리 편의점은 본사와의 가맹 방식에 따라 소자본으로도 창업이 가능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 결과 30년 만에 4만 개 시대가 열렸고 2017년 매출은 22조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진입 장벽이 낮은 시장은 그만큼 빨리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다. 편의점의 폭발적인 성장세 뒤로 출혈경쟁과 시장 포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가맹점주 매출 부진으로 이어졌다. 국내 편의점의 밀집도는 인구 1300명당 1개로 ‘편의점 대국’ 일본(2200명당 1개)을 넘어섰다.
편의점은 일자리 창출에도 한몫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 편의점당 평균 직접고용 인원은 7.1명(가족 종사자 2.8명, 파트타이머 직원 4.3명)이다. 단순 계산으로도 4만개 점포에서 28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력 의존도가 높은 노동집약 산업이니 인건비 비중이 높은 것이 당연하다. 편의점 점포당 전체 수익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5%를 웃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편의점의 발목을 잡았다. 최저임금이 2년 연속 두 자릿수 상승하고 주휴수당까지 명문화되면서 연초 현장에서 만난 편의점주들은 한결같이 “주휴 수당 무서워 알바 못 쓰겠으니 내가 하루 덜 쉬고 나오는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주휴 수당 부담을 덜기 위해 알바 직원을 줄이거나 알바 쪼개기 고용에 나섰으며 가족이나 친척끼리 운영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가맹점주와 알바 직원들이 모두 눈물짓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맹본사는 본사대로 점주들에게 최저임금 인상분을 보전해 준다는 명목으로 지난해 업체별로 수백억 원대 지원금을 내놨다. 지난해 말에는 신규 출점 시 기존 편의점과 50~100m 이상 떨어지도록 개점 거리를 제한하는 자율규약을 도입했다.
업계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가맹사업자의 운영 비용을 가맹본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맹사업의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한쪽에만 공정 거래를 내세우며 다른 쪽에 불공정하게 압박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의 공존은 기업의 숙명이다. 지금 현재 분명한 것은 아직도 기회가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전체 소매시장에서 편의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8%를 웃도는데 한국은 아직 5% 수준이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편의점의 성장잠재력이 크다고 분석한다.
초창기 담배와 음료수, 삼각김밥 등을 팔던 매장이 이제 택배, 금융 등 첨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객 서비스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재난피해지역에 구호물품을 전달하고 지자체들이 ‘여성 아동 안심지킴이집’으로 지정하는 등 공공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
포스에 입력되는 고객 빅데이터를 비롯해 이미 테스트 중인 무인매대, 원격점포관리, 안면인식 결제, AI결제 로봇 등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편의점을 미래 유통 플랫폼으로 등극시키는 첨단무기가 된다. 편의점업계가 가맹점주와 알바 직원과의 상생을 통해 현 위기를 잘 극복해 낸다면 미래의 기회가 열릴 거라 생각된다. h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