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광고로 보는 경제] 인싸게임 ‘안녕! 클레오파트라! 세상에서 제일 가는 포테이토칩!’의 유래를 찾아서

입력 2018-12-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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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 잡지에 실린 감자칩 '크레오파트라'의 광고.
▲1980년대 한 잡지에 실린 감자칩 '크레오파트라'의 광고.

1980년대 중반 어느 잡지의 광고.

‘크레오파트라 포테토칲’

당시 판매했던 평범한 감자칩 광고다. 근데 광고와 과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감자칩이 출시된 1980년부터 30년이 넘게 지난 현재, 이 과자와 관련해 발생한 풀리지 않는 어떤 미스터리를 파헤치기 위해 이 광고를 소개했다.

기자는 인싸가 아니라서 몰랐는데, 약 3년 전부터 유행해 온 인싸들의 술게임이 있다. 이름도 정말 긴 인싸들의 게임. 바로 ‘안녕! 클레오파트라! 세상에서 제일 가는 포테이토칩!’이다.

게임 규칙은 이렇다. 게임을 시작하는 이는 게임의 이름을 박자에 맞춰 노래로 부른다. 박자는 ‘안녕 / 클레오-파트라! / 세상에서 / 제일가는 / 포테이토 / 칩!’으로 끊어 부른다(음도 박자도 정해진 규칙이 있으므로 궁금한 독자는 영상을 찾아보길 권한다). 다음 사람은 앞 사람보다 더 높은 음으로 동일한 노래를 부른다. 다음 사람은 더 높게, 다음 사람은 더욱더 높게… 결국 앞 사람보다 높게 부를 수 없는 사람은 벌칙으로 술을 마시며 게임이 종료된다.

▲'에이 그런 게임이 어딨어?'하고 의심할 이들을 위한 증빙 자료. 진짜 인싸게임 맞다. (출처=유튜브 동영상 캡처)
▲'에이 그런 게임이 어딨어?'하고 의심할 이들을 위한 증빙 자료. 진짜 인싸게임 맞다. (출처=유튜브 동영상 캡처)

기본적으로 술 게임이란 배석한 사람들에게 술을 먹이기 위해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만든 게임이다. 근데 그래도 최소한 그 기원에 대해 나름의 맥락이란 것은 있다.

이를테면 돌아가면서 1~3개의 숫자를 연달아 말하며 1부터 이어가다 마지막에 31을 말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게 하는 ‘배스킨라빈스 31’이란 게임이 있다. 게임의 긴장감 측면에서 숫자 끝을 30~40 정도로 맞춰두는 게 적절한데(끝이 7이라던가 120이었으면 아무도 이런 게임을 안 할 것이다), 마침 31을 상징 숫자로 채택한 친숙한 아이스크림 가게 이름이 있어 따다 붙였다고 추론된다.

‘지하철’은 해당 지역 지리에 익숙치 않은 사람을 골탕 먹이는 재미로 만든 게임이다. 게임 진행자가 제시한 지하철 노선의 역 이름을 못 대는 사람이 술을 먹는다. 대학 진학 시 집에서 먼 타 지역의 학교를 입학하는 경우가 흔하다. 상경한 학우를 겨냥해 ‘서울 지하철 6호선’을 제시한다거나, 혹은 부산으로 이사 온 친구에게 ‘부산 지하철 3호선’ 같은 문제를 제시해 술을 먹이는 상황을 다들 한 번씩은 목격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 전문점 배스킨라빈스 31(왼쪽)와 서울 지하철 노선도. 이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술 게임에 응용됐다.
▲아이스크림 전문점 배스킨라빈스 31(왼쪽)와 서울 지하철 노선도. 이들은 각기 다른 형태로 술 게임에 응용됐다.

‘안녕! 클레오파트라…’ 게임은 위의 게임들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유래에 맥락이 없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맥락이 ‘없다’기 보단, 맥락이 ‘있겠지만 무엇인지 알기가 마땅치 않다’. 하고많은 감자칩 중에 30년 전에 출시돼 이미 단종된 감자칩의 이름으로 술 게임을 만든 이유가 무엇이며, 그게 또 돌아가며 높은음의 노래를 부르는 게임 규칙과는 대체 어떻게 연결된 것인가. 기자는 2018년 12월 19일 ‘안녕! 클레오파트라…’를 처음 배운 것을 기념해 게임의 유래에 대해 파헤쳐봤다.

◇‘클레오파트라 포테토칲’에 대하여

‘안녕! 클레오파트라…’ 게임의 원류가 농심의 ‘클레오파트라 포테토칲’이었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게임의 제목에서 ‘포테이토칩’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안녕! 클레오파트라…’ 노래가 출시 당시 이 과자의 CM송이었던 것은 아닐까? ‘손이 가요 손이 가~’의 새우깡과, ‘사랑과 우정의 상징~’의 양파링으로 CM송계의 입지전적인 반열에 오른 기업, 농심의 과자이지 않은가. 꽤나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1983년 '크레오파트라'의 광고는 고 이주일 씨가 출연했다. 그가 부른 CM송은 지금의 '안녕! 클레오파트라…'와는 전혀 관련 없는 멜로디와 리듬의 곡이었다. (출처=유튜브 캡처)
▲1983년 '크레오파트라'의 광고는 고 이주일 씨가 출연했다. 그가 부른 CM송은 지금의 '안녕! 클레오파트라…'와는 전혀 관련 없는 멜로디와 리듬의 곡이었다. (출처=유튜브 캡처)

완전 틀렸다. 1983년에 고(故) 이주일 씨가 출연한 ‘크레오파트라’ 광고를 확인해본 결과, 이 과자의 CM송은 우선 가사부터가 전혀 다르다. 이주일 씨가 출연한 광고의 가사는 이러하다.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칩. 농심~ 크레오파~트라~. XXX~(‘일세요’로 들리는데 의미불명) 농심~. 크레오~파트라~”

리듬과 장르도 전혀 다르다. ‘안녕! 클레오파트라…’의 노래는 게임 참가자들의 박수소리의 타악 박자에 기반한 경쾌한 리듬의 곡이다. 반면 이주일 씨가 부른 CM송은 하프 연주에 기반한 구슬프고 애절한… 마치 클레오파트라를 향한 애절한 사랑이 묻어나는 듯한 리듬의 곡이다. 아무리 혁명적인 편곡을 시도했다고 생각해 보더라도 이 CM송을 ‘안녕! 클레오파트라…’ 게임의 노래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TV광고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단서 하나를 찾았다. 당시의 감자칩 ‘크레오파트라’라는 상품의 입지가 굉장한 수준이었다는 점. 1983년 하반기 한 일간지 기사에서는 “이주일을 광고모델로 한 농심크레오파트라는 최근 유행하고 있는 ‘말 되네’와 비음 섞인 ‘드세요-옹’ 등의 반복 표현(CM송이 아닌 다른 광고에서 나온다)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유해해 방송심의위원회가 해당 광고를 시정토록 결정했다”라고 한다.

당시 수많은 청소년이 광고의 문구를 따라 할 만큼(심지어 시정조치가 내려질 정도로!), 소비자들에게 강하게 각인된 제품이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렇게 80년대 소비자의 뇌리에 깊숙하게 남아있던 감자칩 ‘크레오파트라’는 2012년 갑작스럽게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는 사건을 맞는다.

◇감자에 붙은 노래, 그리고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2011년 하반기 즈음, 감자와 ‘크레오파트라’를 활용한 정체불명의 춤과 노래가 발명된다.

‘감자, 감자에 감자~. 농심, 클레오파트라(이하 반복)’

이 노래는 이름도 딱히 없기 때문에 가사 일부를 따 ‘감자에 감자’ 노래라고 부르자.

이건 딱히 술 게임으로 만들어진 곡은 아니다. 우선 노래를 부를 땐 한 손을 높이 들고 나머지 한 손은 주먹을 쥔 채 주먹으로 허리를 두들긴다.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무미건조한 음의 노래와 함께 부르는 것이 웃음 포인트다. 그냥 이 동작으로 친구들이랑 신나게 춤을 추는 영상을 찍기도 하고, 먼저 웃음이 터진 친구의 등을 두들기는 등 춤을 활용한 여러 가지 유희의 방식이 존재한다.

▲'감자에 감자' 노래는 이런 모습의 춤에 맞추어 무미건조한 톤으로 불러야 한다. 사진에서처럼 어린 여학생들 사이에서 잠시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판도라, 네이버 동영상 캡처)
▲'감자에 감자' 노래는 이런 모습의 춤에 맞추어 무미건조한 톤으로 불러야 한다. 사진에서처럼 어린 여학생들 사이에서 잠시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처=판도라, 네이버 동영상 캡처)

자꾸 이런저런 설명이 길어지는데, 기자처럼 인싸 문화를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자세히 설명하려다보니 그렇다. 원래 인싸가 되는 길은 험난하다.

아마 감자에 대한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여기에 춤을 추며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80년대부터 이 과자를 기억해 온 어느 어른이 ‘우리 땐 감자하면 크레오파트라였지!’하며 가사에 클레오파트라를 추가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2012년 경 여중생과 여고생들에게 유행했던 이 노랫말의 ‘크레오파트라’를 그 나이대 학생들이 알고 붙였다고 보기는 너무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래를 통해 구전으로 전수돼 온 감자칩 ‘크레오파트라’에 대한 기억은, 2015년경 지금의 노랫말의 모습을 찾게 되는 일대 전환점을 맞는다.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그의 등장은 '안녕! 크레오파트라…'의 비밀을 풀 결정적인 단서다. (출처=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 캡처)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 그의 등장은 '안녕! 크레오파트라…'의 비밀을 풀 결정적인 단서다. (출처=MBC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 캡처)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화제의 TV프로그램의 반열에 올려놓은 가왕(哥王).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는 ‘복면가왕’에 총 11회에 걸쳐 출연했다. 그는 2015년 5월 17일 방영분인 7화부터 2015년 7월 19일 16화까지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가면을 쓰고 출연했고, 7월 26일 방영된 17화에서는 가면을 벗은 ‘김연우’의 모습으로 출연했다.

현재까지 찾아본 바로는 ‘안녕! 클레오파트라…’ 게임의 영상 중 가장 오래된 게시물은 2015년 8월경.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가 하차하던 시점과 ‘안녕! 클레오파트라…’게임의 부흥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

감자칩, 클레오파트라, 노래, 복면가왕, 고음 게임…. 그렇다. 거의 다 왔다.

지금까지의 탐사 여정을 정리해 보자.

1. 1980년. 태초에 감자칩 ‘크레오파트라’가 있었다.

2. 이 과자는 고(故) 이주일 씨가 출연한 CF를 통해 대중들에게 ‘감자칩’의 대명사격으로 자리매김했다.

3. 그렇게 중장년층이 기억하던 ‘크레오파트라’는 2012년 경 ‘감자에 감자’ 노래에 붙으며 생명력을 이어갔다.

4. 구전하던 ‘감자에 감자’ 노래에 붙어있던 ‘클레오파트라’는 2015년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가 히트를 치며 역으로 ‘클레오파트라’에 감자가 붙는 노래로 재탄생한다.

5. 화생방실 클레오파트라의 폭넓은 음역대에 감명받은(?) 노래 창작자(혹은 다수일 수 있다)는 이 노래를 돌아가면서 고음을 내는 술 게임으로 만든 것으로 추론된다.

추적 과정에서 중간에 다소 느슨한 연결고리도 있고, 정확한 해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우리는 개연성 있는 추론으로 진실의 일각에 접근해냈다!

잠깐, 한 가지 잊은 게 있다. 이 모든 게 혹시 농심의 고도의 바이럴 마케팅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만들어 낼 수 있는 ‘바이럴 마케팅’이 아니다

즉시 농심에 확인 전화를 해봤다. 농심 관계자는 농심 직원들의 상당수가 ‘안녕! 클레오파트라…’ 게임을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다만 ‘감자에 감자’ 노래는 이 관계자도 기자에게 처음 전해 들었다고 답변했다.

농심 측은 바이럴 마케팅이 절대로 아니라고 일축했다. 이미 2000년경에 단종된 감자칩에 대한 바이럴마케팅을 10여년 만에 애써 시도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크레오파트라’는 1980년에 ‘포테토칩’과 함께 동시에 출시된 과자다.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하려면 차라리 지금도 시판 중인 ‘포테토칩’에 실시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바이럴설에 집착하던 기자는 농심 관계자가 마지막에 덧붙인 허망해하는 설명에 승복하고 말았다.

“그럼 ‘코카콜라 맛있다’는 코카콜라에서 만들었나요?”

노래나 게임에 흡착되며 회자하는 상품명의 사례에는 앞서 말한 ‘배스킨라빈스 31’도 있고, 위 관계자가 언급한 ‘코카콜라 맛있다’ 같은 경우도 있다. 그의 설명처럼 원래 이런 식으로 대중 사이에서 상품명이 회자되는 일을 일개 업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설령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 “우리 ‘배스킨라빈스 31’게임 하는 김에 아이스크림도 사 먹을래?”라던가 “‘코카콜라 맛있다’ 하니까 코카콜라 생각난다. 한 잔 먹으러 가자!”라고 하는 게 그리 빈번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년마다 찾아오는 롯데제과의 성수기 '빼빼로데이'. 이런 거대한 성공을 거둔 마케팅은 업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매년마다 찾아오는 롯데제과의 성수기 '빼빼로데이'. 이런 거대한 성공을 거둔 마케팅은 업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만 얻어걸리면 세상을 뒤바꿀만한 마케팅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이 분야의 전설. ‘빼빼로데이’다. ‘빼빼로데이’ 기원 역시 롯데제과가 만든 것이 아니다. 어느 지역의 고교생 사이에서 11월 11일에 빼빼로를 선물하던 유행이 전국적으로 퍼져갔다는 이론이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하지만 롯데제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미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던 빼빼로데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했고, 결국 11월마다 찾아오는 빼빼로의 대 성수기를 창출해냈다. 만약 막대과자를 선물하는 11월 11일의 기념일 이름이 ‘포키데이’라던가 ‘쿠크다스데이’, ‘초코하임데이’였다고 생각해보자. 롯데제과 임직원들은 아마 이런 세상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농심이 조금 더 유행에 발 빨랐다면 ‘안녕! 클레오파트라!’ 대신 “안녕! 포테토칩!”을 넣은 게임으로 다시 유행시켜, 이 노래를 연호하며 포테토칩을 사먹는 세상을 만들 수 있었을까? 기자는 개인적으로 “안녕! 포테토칩!”은 유행하는 일이 없었을 거라 본다. 일단 박자가 안 맞고, 어감도 ‘클레오파트라’ 만큼 멋지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포테토칩’이 단종되고, ‘크레오파트라’가 지금까지 시판 중이었다면 대박의 기회가 더 많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이런 식의 초대박 마케팅은 노력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스티브 잡스’나 ‘강남스타일’처럼 행운의 영역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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