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자살률이 조금씩 낮아지며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 불명예를 리투아니아에 넘겼다. 이번 글에서는 나라 간의 연령별 인구 수가 다른 것을 조정한 후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기준으로 작성된 통계를 이용한 국제비교를 살펴보고자 한다. 2016년 리투아니아의 자살자 수가 26.7명으로 한국의 24.6명을 상회했다. 대부분 OECD 국가들에서 자살자 수가 20명을 훨씬 못 미치고 있어 두 나라는 자살률이 유난히 높다.
자살 관련 국제비교에서 눈에 띄는 우리나라의 특징이 있다. 첫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특히 2003년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다. 외환위기 이전엔 15명 수준에 머무르다, 1998년 한 해 21명으로 급증했으나 이후 18명으로 낮아지는 듯했다. 그런데 2003년 28명으로 빠르게 늘더니 2009년 33명을 넘겨 정점을 찍었다. 이 기간에 한국과 같은 상승세를 보인 나라는 없었다.
러시아의 인접국 리투아니아의 자살자 수는 한때 40명을 상회하며 우리보다 훨씬 높았으나 우리나라의 통계가 상승할 시점부터는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일본이나 일부 유럽 국가들의 자살률이 한국보다 높았지만 그 이후 추세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둘째, 2000년대 초 이후 한국의 여성 자살률은 OECD 회원국 중 유난히 높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전반적 흐름은 2009년에 23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점차 낮아지며 남성 자살률과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성별 비율로는 남자가 2.5배 정도 많다. 남성 자살률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인 리투아니아의 경우 여성 자살자는 2015년 9.5명으로 우리(14.7명)보다 훨씬 낮다. 그런데 2000년대 초까지 한국보다 높았던 일본의 여성 자살률도 그 이후 리투아니아와 비슷하거나 더 높게 유지되며 OECD 회원국 중 2, 3위수준이다.
첫 번째 특징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위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추세적 상승세는 위기와 이어진 경제적·사회적 구조 변화의 충격이 꽤나 컸음을 방증한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역시 우리 사회에 미친 충격 또한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 이후 자살률이 뚜렷하게 낮아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경제 안정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자살 충동과 실행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들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러시아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정부가 1980년대 중반 보드카의 생산과 판매를 엄격히 규제하면서 단기간에 자살률이 크게 떨어진 사례도 있다. 국내에서 흔했던 맹독성 제초제 파라퀴트의 생산과 판매를 2012년부터 전면 금지한 것이 그 이후 자살률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생존자들 대부분이 이후 오래 살았다는 해외의 조사들도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저출산 현상과도 연관이 있어 의미심장하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특히 낮은 것은 여성 자살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높은 것과 관련 있다. ‘2017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07년 20대 여성 자살자 수가 23.4명으로 19.3명이었던 남성보다 많았다. 그 이후 점차 낮아지며 성비(性比)도 역전됐지만 그간 이런 추세가 출산율 저하에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자살은 개인에게 매우 안타까운 일인 동시에 경제활동인구의 골격을 스멀스멀 부식시키는 위협 요인이다. 2017년 10·20·30대의 제일 큰 사망 원인은 바로 자살이다. 따라서 젊은 인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자살 방지를 위한 노력, 젊은 층의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 절주·금주 등 건강한 생활방식 장려가 필요하다. 일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자살률 통계는 우리 사회에서 양성평등 상황이 더 개선되어야 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