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호의 고미술을 찾아서] 컬렉터가 그 욕망의 덫을 벗을 때

입력 2018-1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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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술 평론가, 전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미술품 컬렉션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저 아득한 옛날에도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사랑했고, 수집하고 보존했다. 그 정신은 세월의 강을 건너고 건너 이 시대에 전해져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꿈꾸는 아름다움을 찾아 컬렉션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흔히 컬렉션을 경제력에 더해 열정과 집념의 소산이라고 한다. 경제력이 선대의 유산이나 사업적 수완에 좌우되는 것이라면 열정과 집념은 작품에 대한 사랑이 있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수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듯 아름다움을 향한 사랑과 집념으로 수집된 미술품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세월의 무게 때문이었을까, 컬렉션은 다 흩어져 사라지고 컬렉터들의 자취만 무성하다. 수집은 이루었으나 지킬 수는 없었던지, 조선시대 그 많았던 컬렉션이 이곳저곳에 간간이 흔적만 남기고 있고, 근현대 제일의 오세창 컬렉션도 그런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손에 넣기 위해 불태웠던 열정으로 조선시대 서화의 정수(精髓)를 수집한 손재형의 컬렉션도 그의 생전에 다 흩어지고 지금은 이름으로만 남아 있다.

미술품은 명품일수록 권력과 돈을 좇아 유랑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권력과 돈은 부침하는 것, 시운이 다하면 사라지듯 컬렉션도 흩어지는 운명을 타고나는 것일까? 컬렉터도 자신이 수집한 명품에 그런 유랑(流浪)과 유전(流轉)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알았을까? 알고도 그건 운명이라고 체념했을까? 조선 초의 대 수장가 안평대군(1418∼1453)은 자신의 컬렉션이 흩어질 불길한 운명을 예측이나 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 “아하! 물건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때가 있으며 모이고 흩어짐이 운수가 있으니 대저 오늘의 이룸이 다시 내일의 무너짐이 되고, 그 모음과 흩어짐이 또한 어쩔 수 없게 될는지 어찌 알랴!”(신숙주, 보한재집 保閑齋集)

여기서 우리는 다시 컬렉션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향한 사랑이 컬렉션의 원형질이라면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 욕망은 자양분이다. 사랑이 없으면 컬렉션은 싹트지 못하고, 욕망이 없으면 자라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컬렉터는 자신만의, 자신만을 위한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집착한다. 그 또한 컬렉터의 숙명일지나, 컬렉터가 그 욕망의 덫을 벗을 때 자신이 탐하는 아름다움은 소유의 경계를 넘어 세상을 매혹하는 아름다움으로 바뀐다. 이를 두고 한 개인의 컬렉션 욕망이 사회적 문화정신으로 승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닫힌 컬렉션에서 열린 컬렉션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욕망을 넘어 진정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이고, 유랑·유전의 운명을 타고난 명품들을 그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길이다.

그 길의 참의미를 알았기에 박병래(1903∼1974)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수집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고 이홍근(1900∼1980)도 그 길을 걸었다. 그 길을 따라 걸은 또 다른 많은 컬렉터들이 있어 그들의 수집품은 안식처를 찾았고, 우리는 그곳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을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뜻깊은 전시가 열리고 있다. ‘손세기·손창근 기증 명품 서화전’이 바로 그것이다. 대를 이어 모아온 손씨 집안의 소장품 304점이 국가에 기증된 것을 기념하고 일반에게 공개하는 자리다. 추사 김정희가 만년에 그린 불후의 명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를 비롯하여 작품 하나하나에는 그분들의 한없는 사랑이 배어 있고, 보는 이의 가슴으로 전해져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컬렉션의 기증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더불어 문화강국으로 거듭나는 희망을 보게 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깊은 울림이 있다. 문화유산의 수집 보존에 헌신하고 종국에는 그 모두를 사회에 되돌리는 그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비로소 문화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까.

오늘도 나는 국립중앙박물관 3층의 기증실을 거닐며 그 빛나는 아름다움을 눈에 담아보고 그들의 숭고한 문화정신을 추억한다. 고이 키운 딸자식을 시집보내듯 평생 모아 애지중지해온 수집품을 떠나보내는, 참으로 외롭고 힘들었을 결정의 순간을 떠올리고, 우리 민족이 꿈꾸어온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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