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국욕’은 ‘나라의 치욕을 크게 갚아라’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장군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난중일기’ 중 제3권이라고 할 수 있는 ‘갑오일기’에 나옵니다. 전쟁이 햇수로 3년째 되던 1594년(갑오년) 1월 11일(음력) 저녁 장군은 멀지 않은 곳에 머물던 어머니를 문안하러 갑니다. 왜적이 며칠 잠잠할 때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식사 후 장군이 하직 인사를 올리자 장군의 어머니는 “어서 가라. 가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는 말씀만 거듭하십니다.[朝食後, 告辭天只前, 則敎以好赴, 大雪國辱, 再三論諭, 無以別意爲嘆也-天只는 어머니, 大雪은 크게 설분하라는 뜻.] 몸조심해라’, ‘이제 가면 언제 또 볼꼬’ ‘살아서는 올거나’ 등 아들과 헤어지는 데 대한 슬픔이나 아쉬움의 탄식은 전혀 없습니다.
이 평화시대에 나라의 치욕은 웬 말이며, 그것을 크게 갚으라는 말은 또 무엇이냐? 우리가 지금 다시 침략을 당한 것도 아닌데 왜 흥분하고 난리냐? 이렇게 물으신다면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혹시 요즘 우리나라 어머니들에게 장군의 어머니를 좀 닮으라고 하려는 거냐고 묻는다면 그런 의도가 아주 없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장군 어머니의 당부에는 그 이상의 뜻이 담겼다고 생각합니다. 장군 어머니의 이 말씀을 잘 설명한 소설(김원우 ‘이 세상 만세’, 2018. 7) 한 구절이 있어 여기 옮겨보렵니다.
“…중년의 아들은 모친으로부터, 잘 내려가거라, 어서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으라는 당부의 말을 듣는다. 모친은 일흔여덟 살의 고령으로 헤어지는 슬픔을 끝내 말씀하지 않으셨다. …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하루빨리 이 환란의 한을 풀라는 당부는 아들의 능력을 믿어서도 아니다. … 오로지 이 피비린내 나는 재앙을 불러온 왜적의 만행이 그치도록 힘껏 싸우라는 것이다. 조용히 잘 살아가는 나라를, 그 속의 만백성을 마구 죽이는 원수의 행패를 무찌르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인간인가. 그러니 싸우다 죽으라는 간곡한 권면이다. 살아서 다시 문안 인사를 하러 올 생각은 거두라는 그 신칙(申飭, 준엄한 당부)은 만백성의 머리꼭지에서부터 발부리에까지 추레하니 또 비굴하게 매달려 있는 투생주의(偸生主義, 나만 살면 된다는 생각)에 대한 피 맺힌 원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므로 너라도 구차하게 살 생각을 버림으로써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다. … 당연하게도 이순신은 장군으로서가 아니라 한낱 전사로서 죽기로 결심한다.”
‘상유십이 미신불사(尙有十二 微臣不死)’는 장군이 우리에게 남긴 불멸의 어록입니다. 장군은 전쟁 7년째, 정유년 초 모함으로 옥살이를 하고 겨우 풀려나 백의종군하다 왜적을 무찔러 달라는 임금에게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신도 살아 있습니다”라는 이 어록은 IMF 금융위기 등 나라에 닥친 어려운 일이 개인의 삶을 옥죄었을 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그 어려움을 헤쳐 나오게 해준 등대이자 길잡이였습니다. 나는 장군 어머니의 당부가 없었더라면 장군의 이 위대한 어록도 없었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머니의 불멸의 어록이 장군의 그 어록을 낳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