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제약회사 영업사원 B 씨는 일찌감치 ‘주 52시간’에 대한 환상을 접었다. 저녁 술자리 등은 명백히 영업의 연장선이지만, 회사는 이를 ‘자발적’ 근무로 포장해 버렸다. 접대는 영업직군의 숙명이라고 생각해 봐도 때때로 찾아오는 상대적 박탈감은 B 씨를 괴롭힌다.
주 52시간 근로 시대를 맞이하면서 제약업계는 직군에 따라 다양한 근무 방식을 마련했다.
내근 직원들은 근무시간을 더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됐고, 불필요한 회의 대신 집중 근무시간으로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일부 제약회사는 PC 셧다운을 통해 초과 근무를 원천 봉쇄하기도 했다. 근로시간이 불규칙한 연구개발 인력에는 자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는 재량근무제를 적용했다.
문제는 영업직군이다. 제약회사들은 회사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영업사원의 특성을 고려해 간주근로제를 도입했다. 간주근로제란 영업사원처럼 사업장 외부에서 근무해 실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울 때 근로자와 합의해 소정의 근무시간을 일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회사는 소정 시간을 8시간으로 한정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을 인정하려면 노사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간주근무제는 영업사원들의 근로시간을 실질적으로 줄여주지 못하는 ‘꼼수 처방’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대다수 영업사원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시행되고 나서도 종전과 다를 바 없이 일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오히려 간주근로제로 인해 회사가 초과 근로시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수당을 받을 길마저 막혀 버린 곳도 적지 않다.
영업사원 C 씨는 “공식적으로는 주 52시간을 벗어난 영업활동을 금지하고 있지만 자발적 근로는 개인의 판단이라며 회사가 모른 척하는 셈”이라며 “실적이 아쉬우면 알아서 일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실적이 평가의 척도인 영업사원들에게 회사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발적 초과근무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 같은 부당한 상황의 발생 가능성은 인정하면서도 영업직군의 간주근무제를 뛰어넘는 묘수를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중견 제약회사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로제는 영업 마케팅 의존도가 높은 제약사 처지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제도”라며 “법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간주근무제 외에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처벌 유예기간에 제약회사들은 내부 조율을 거쳐 가장 적합한 근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또 다른 제약회사 관계자는 “영업직군이 상대적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미흡한 점을 개선해 모든 직원이 만족하는 방안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