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터를 마련하는 개와 말의 수고에 지쳤을 그대에게 건넬 긴한 이야기가 있으니 짬을 내 귀를 열어라.
이곳을 영장류의 땅으로 알고 침노했을 그대에게 조언을 하고자 한다. 여왕의 눈에 보이는 약해 빠진 모습은 진짜가 아니다. 사실 이곳은 인간의 모양을 딴 탈을 쓴 곤충의 나라다. 이 땅에는 만인이 만인을 혐오하며 살기를 뿜는 벌레들이 살고 있다.
적의 말을 곧이 믿기는 어려울 터, 우선 서식 중인 개체들의 정체를 알려 그대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 이곳에서 그대와 맞서게 될 종족은 유전학적으로 한남충, 계급은 급여충에 해당하는 벌레다.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영예로는 진지충과 설명충이 있으며, 한편으로 애비충이고 또한 엄빠충이기도 하다. 그뿐인 줄 아는가. 향후 노인충에 봉해지고 이어 틀딱충으로 진화할 신성한 존재다.
그대의 붉은 군대는 생명을 위협하는 맹독을 지녔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용맹한들 급여충의 선봉을 무릎 꿇릴 수는 없다. 급여충 수련생활 20년에 이른 장수에게는 이미 부장충이라는 작위가 내려졌다. 부장충은 몇 마디 말만으로 사방 십리를 얼려버릴 가공할 힘을 얻게 되니, 이는 부장님 개그라는 궁극의 무예다. 만일 붉은 군대가 침입한다면 영문 모를 냉기에 신음하며 스러져 갈 터이니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할 게다.
하늘이 도와 얼어 죽지 않는다 한들 끝이 아니다. 부장충은 학계가 진지충과 설명충으로도 분류하는 다중인격체다. 갑작스런 정색은 붉은 군대의 손발을 어지럽힐 것이며, 끝간 데 없는 잔소리는 귀에 선혈이 흐르게 할 것이다. 때로 포유류인 개저씨로 퇴화하는 몹쓸 병에 걸린 이들이 있으나, 그들의 사나움 또한 능히 부장충을 넘볼 만하니 두려워할진저.
혹여 운이 따라 부장충의 예기를 꺾어도 소용없다. 그대의 야욕을 막아설 또 다른 정예들은 얼마든지 있다.
맘충은 오직 전진만을 아는 진정한 전사들이다. 그들은 두터운 안면 가죽을 갑옷 삼고 철없는 유충을 방패 삼아 맘카페에 집결한 뒤 그대의 군대를 어이상실 상태로 몰아넣을 것이다. 사방으로 내달아 적진을 유린하는 유충의 교란전술과 맘충의 궁극기인 적반하장이 동시에 시전된다면 붉은 군대는 낙엽처럼 쓸려나갈 뿐이다.
유충과 마주하게 된다면 가책 따위에 흔들리지 말 것을 권한다.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급식충으로 자랄 것이며, 곧 중2병이라는 기적의 무기를 손에 넣어 그대의 심장을 겨눌 것이다.
중2병 급식충의 기습은 담임충, 엄빠충조차 제어할 수 없는 무자비함의 정수로, 가빠진 숨통을 끊어놓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피하는 것만이 유일한 책략이리라.
급식충은 각자 믿는 바에 따라 좌좀충, 우꼴충으로 변태를 일으킬 것이며, 혹자는 일베충으로 패륜의 길을 걸어 곳곳에 출몰해 도발할 것이다.
붉은 불개미 군대여, 가혹한 운명과 마주할 그대들을 긍휼히 여겨 천기누설의 자비를 베풀고자 한다. 번영하던 푸른 강산을 벌레의 땅으로 만든 힘인 혐오는 그 뿌리가 사실 이곳에 있지 않다. 어둠을 도와 비수를 꽂는 닌자의 비열함과 집단 뒤에 숨고 익명으로 가린 채 내뱉는 독한 말의 닮은 구석만 살펴도, 혐오가 어디서 왔는지 짐작하기에는 가히 남음이 있으리라.
인간을 벌레로 둔갑시키는 도술인 혐오는 본디 왜나라의 것이다. 오래전 왜국에서 스며든 왕따와 이지매에 현혹된 어린 양민들은 안타깝게도 왜인들이 쓰다 버린 헤이트스피치(Hate Speech)마저 새 문물로 오인해 받아들였다.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인 양 혹세무민하는 혐오는 왜국에서 힘을 잃자 이 땅에 건너와 주인 행세를 할 뿐이다.
여왕이여,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라. 그대가 상대할 어둠의 힘은 현해탄 너머에 화수분이 숨겨 있다.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하늘에 닿았고 오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를 다했으니, 만족함을 알고 바다 건너 섬으로 떠나기를 권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