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80년대에 목포에서 주로 활동한 시인 김일로(1911~1984)는 선시(禪詩)와 같은 경지의 시를 썼고, 또 한글 시와 한문시의 오묘한 계합(契合)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우리 문학사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예를 들자면, “꿩 소리 귀에 담는 황소 눈에 흰 구름”이라는 짧은 시로 한가한 봄날의 풍경을 읊은 다음에 이것을 다시 한문시로 치환하여 “錦繡山河春日長(금수산하춘일장·錦:비단 금, 繡:수놓을 수)” 즉 “금수강산 이 산하에 봄날은 길어”라고도 읊었다. ‘송산하(頌山河)’라는 시집을 한 권 남겼다.
필자는 작년에 이 시집의 한문 부분에 대한 번역과 함께 시인의 높은 뜻을 풀어 ‘꽃씨 하나 얻으려고 일 년, 그 꽃 보려고 다시 일 년’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런 김일로 시인이 어머님의 은혜를 “포근한 가슴에 새긴 슬픔 지우질 못해 찾는 보살님”이라고 읊었다. 그리고선 다시 한문을 사용하여 “母恩如海人子恨(모은여해인자한·恩:은혜 은. 如:같을 여, 海:바다 해, 恨:한할 한)”이라고 읊었다. “어머님 은혜는 바다와 같으니 자식은 그게 한스럽습니다”라는 뜻이다.
포근한 어머니 가슴에 내가 새긴 게 무엇인지 어머니는 전혀 모르는데 나는 안다. 거짓말도 많이 했고 말썽도 많이 부린 줄을 나는 아는데 어머님 가슴에는 그런 게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슬프다. 내가 어머니 가슴에 새긴 그 또렷한 그것을 지우지 못해 뜨겁게 다시 찾는 어머니! 그런데 어머니는 애저녁에 보살님이 되었다.
어머님 은혜가 강(江)만 하다면 갚아볼 엄두라도 내 보겠지만 망망대해(茫茫大海)이니 갚을 길이 전혀 없다. 그래서 슬프다. 아버님이라 해서 다를 바 없다. 아버님 가슴에 아무리 많은 것을 새겨놓았어도 그저 묵직한 눈길로 굽어보시며 끝내 나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사랑. 어버이날만이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식이 또 그렇게 대견할 것이다. 어버이께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