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특히 기업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이 흔히 기가 막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투자를 받아 사업이 순조로이 진행될 것이라는 단순하고 과도한 긍정심으로 일을 시작한다. 펀딩을 받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고 펀딩을 받아내는 것 자체가 성공인 것처럼 아는 경우가 많다. “가나 벤처가 시리즈 A펀딩으로 100억 원을 유치, 다라 벤처가 시리즈 B로 500억 원을 유치….” 이런 소식이 언론이나 SNS에 나오면 축하와 부러움의 목소리가 크다. 그 반면(反面)의 현실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편딩은 일종의 빚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절대 필요하다. 빚을 내어 투자하는 것이 옳은 상황도 있지만, 이 세상에 어떤 빚도 갚아야 하는 남의 돈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특히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지면 안 된다는 원리가 벤처에서도 적용된다.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 하더라도 결국 잠 못 자고 피를 말리면서 일하는 것이 펀딩을 준 벤처캐피털의 배만 불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약 8년간 벤처를 일구어 2000년대 초 그리 적지 않은 가치로 인수합병에 성공해 사업을 넘긴 분이 있었다. 그분과 초기 멤버에게 돌아간 경제적 이윤은 그 긴 시간 머리가 빠지도록 스트레스 받으며 노력한 결과에 비해 너무도 초라했다. 이에 반해 한 번의 외부 투자 없이 커온 인터넷 패션회사가 글로벌 화장품 기업에 지분을 인계하며 30대 창업자가 상상하기 어려운 수익을 냈다는 신문기사가 있었다.
펀딩에 반드시 따라오는 단어가 가치 평가다. 펀딩의 규모가 얼마일 때 얼마의 지분을 가질 수 있느냐는 계산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종종 나중에 곤란하게 되는 중요한 계산이 있다. 이른바 포스트 밸류에이션 (post-money valuation)이다. 자금 유치를 하고 나서 계산되는 가치평가인데, 당연히 투자를 받은 후 가치평가는 투자를 받기 전보다 커진다. 이윤 창출과 성장의 기대치도 올라간다.
그러나 펀딩을 받았다고 바로 생각만큼 의미 있는 성장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올라간 기대치를 맞추려고 겉으로 보이는 확장을 무리하게 추진하거나 외부 경제지표나 기업 환경이 나빠져 성장 속도가 펀딩 받기 전으로 정체되었을 때, 내가 가지지 않은 물건을 판 것 같은 상황이 되어 벤처를 큰 어려움에 밀어 넣고 쪼들림을 당할 수 있다.
투자를 받게 되면, 특히 규모가 큰 투자를 유치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중요한 결정에 투자자들의 직·간접적 간섭을 피하기 어렵고 과도한 경영 간섭에 족쇄를 차고 전쟁터에 나가는 듯한 제약과 마음고생을 해야 한다. 투자가 벤처의 현실과 비전에 맞지 않는 경우 너무 버겁거나 궁합이 맞지 않는 배우자를 만나 쉽게 이혼도 못하고 빚 때문에 어려운 결혼생활을 지속해야 하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자동차가 먼 길을 갈 때 주유가 필요하듯 펀딩은 중요한 벤처 활동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펀딩을 향해, 펀딩을 목표로 벤처 활동을 잡아서는 절대 안 된다. 가장 바람직하고 중요한 것은 이익 잉여금으로 셀프 펀딩이 될 수 있는 자체 엔진을 만들고 키우는 것이다. 잘못된 펀딩은 벤처를 키우기는커녕 간단히 죽일 수도 있는 위험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