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봄동을 먹으니 봄이 왔다

입력 2018-03-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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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동이 꿀맛이다. 쌈을 싸 먹고, 겉절이로 먹고, 밀가루를 얇게 묻혀 전으로 부쳐 먹으니 입안 가득 봄이 툭툭 터진다. 생긴 모양만 보곤 이런 맛을 절대 기대하지 않았다. 배추처럼 속이 꽉 차지도 않고, 잎들은 땅바닥으로 기어가듯 옆으로 퍼져(‘떡배추’라고도 불리는 이유) 야물지 못한 모습이다. 냉이·달래·쑥처럼 짙은 향을 내뿜지도 않는다. 그런데 한 소쿠리에 2000원도 안 하는 이 소박한 봄동이 그 어떤 화려하고 비싼 음식보다 큰 감동을 준다. 씹는 맛이 고소하고 상큼해 잃었던 입맛도 찾았다.

“양지바른 노지에서 캐 온 놈들이여. 참기름 넣고 깨 넣고 고소하게 무쳐서 드셔 봐. 겨울과 봄을 다 맛볼 수 있을 거여.” 청량리 전통시장에서 나물을 파는(어쩌면 봄을 파는) 할머니의 정감 넘치는 말 덕에 봄동을 제대로 맛봤다.

‘봄동’이라는 이름은 누가 붙였을까? 계절을 두부 자르듯 한순간에 훅 나눌 순 없는 법. 중도(中道)적인 삶을 지향하는 어떤 이가 지었으리라. 겨울과 봄의 맛을 다 안고 있는 ‘봄+동(冬)’이라고.

모든 음식이 그렇듯 봄동도 간간해야 맛이 제대로 산다. 간간하다는 ‘입맛이 당기게 약간 짠 듯한 맛’을 표현한 형용사다. 의사들은 대부분 “싱겁게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말하지만, 나는 입맛에 맞게 간간하게 간을 해서 먹고 산다. 조금 덜 살더라도 맛있게 먹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기분 좋을 정도의 짠맛을 표현하는 우리말이 꽤 있다. 짭짤하다, 짭짜래하다, 짭짜름하다, 짭조름하다…. 음식이 ‘감칠맛 나게 조금 짤 때’ 쓸 수 있는 말들이다. 음식이 조금 짠 듯하면서도 입맛에 맞을 땐 ‘간간짭짤하다’라는 표현을 써도 좋다. “입맛이 없을 때는 간간짭짤한 반찬이 최고지”, “그는 간간짭짤하게 맛있는 젓갈로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처럼 활용할 수 있다.

음식이 맛은 없는데 짤 때는 어떻게 표현할까? ‘간간하다’에서 모음만 살짝 바꿔 ‘건건하다’라고 말하면 된다. ‘찝찌레하다’, ‘찝찌름하다’, ‘짐짐하다’ 역시 입에 당기는 맛은 없는데 조금 짤 때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말맛이 독특해 시골말 같지만 모두 표준어이다.

간이 제대로 되지 않아 싱거울 때는 ‘밍밍하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술이나 담배가 독하지 않아 몹시 싱거울 때도 적합한 표현이다. 간혹 밍밍하다의 의미로 ‘닁닁하다’를 쓰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으로 ‘밍밍하다’만이 표준어이다.

음식의 간이 입맛에 안 맞더라도 요리한 이의 정성을 생각해 ‘건건하다, 밍밍하다’ 등의 표현은 함부로 막 들입다 쓰지 말아야 한다. 음식 타박을 놓다가 집에서 밥도 못 얻어먹는(직접 해 먹거나) 이들을 여럿 봤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이것 참 진진하다”라고 말해야 이것저것 골고루 잘 얻어먹고 살 수 있다. ‘진진하다’는 입에 착착 달라붙을 정도로 맛있다는 뜻이다. ‘건건하다 < 간간하다 < 진진하다’로 맛있는 순서를 기억해 두면 헷갈리지 않을 것이다.

봄의 들녘과 산 길섶은 밥상이다. 햇살 한 자락에 쑥과 냉이, 씀바귀 등 먹을거리가 쑥쑥 자라 밥상을 가득 채운다. 자연의 향기를 맡으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한푼 두푼 돈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영 꾸부렁 활나물/ 동동 말아 고비나물/ 줄까 말까 달래나물/ 칭칭 감아 감돌레/ 집어 뜯어 꽃다지/ 쑥쑥 뽑아 나생이/ 사흘 굶어 말랭이/ 안주나보게 도라지/ 시집살이 씀바귀/ 입 맞추어 쪽나물/ 잔치 집에 취나물…” (구전민요 ‘나물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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