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의혹을 계기로 시작된 이번 조사는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이 구성된 지 일주일 만에 전·현직 여검사들의 성폭력 피해사례가 여러 건 접수됐다. 검찰 내 성(性)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지 짐작케 한다. 진상조사단이 지난주부터 이메일을 통해 전수조사에 돌입한 만큼 피해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조사단이 출범 12일 만인 12일 오후 이메일로 접수한 피해 사례에 대한 확인을 거쳐 모 검찰 간부를 긴급체포하는 등 수사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진상조사단은 최근 수사 인력을 충원했다. 애초 단장인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을 포함해 6명이었으나 황은영 부단장(고양지청 차장검사)과 검사 1명을 추가로 합류시켰다. 진상조사단 내 역할 분담의 경계도 보다 뚜렷이 했다. 서 검사 사건 전담팀과 검찰 내 다른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는 두 개의 팀으로 나눠 활동한다.
지금으로썬 진상조사단의 활동 기간을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몇 개월 만에 끝날 문제는 아니다. 피해자들의 사건 수사 동의를 구하기 위해 신뢰를 차곡차곡 쌓는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앞으로 조 단장의 판단 하나하나가 미칠 파급력은 굉장하다. 검찰이 조사 기간이나 범위에 못을 박지 않고 모든 사항을 들여다보겠다고 한 만큼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하고,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상응하는 조처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신경써야할 부분은 피해자 보호다. 수사 과정이나 블라인드 신문 등 재판 방식까지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진상조사단은 그동안 남몰래 고통을 참아야 했던 검찰 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성폭력은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유일한 범죄다. 근거도 없이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는 사람들 때문에 2차 피해를 당하기 일쑤다.
이미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 의혹과 이로 인해 법무부로부터 부당한 인사를 당했다고 폭로한 서지현 검사를 두고 ‘진로’(進路), ‘방조’ 등의 모욕성 발언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서 검사는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내 엄단을 요청했다고 한다. 진상조사단 역시 2차 피해를 조사 범위에 포함시켜 각종 의혹을 파헤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한 성(性)이 다른 성에 피해를 당하고도 억눌려 지내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더욱이 수많은 범죄의 진실을 규명하고, 가장 정의로워야 할 검찰에 이런 문화가 남아있다는 것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진상조사단의 역할이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재발방지를 위한 확실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이번 일을 교훈으로 성폭력 범죄 처벌과 예방을 위해 전담기구를 상설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피해자와 아픔을 함께하고 동료로서 따뜻하게 껴안아 줄 수 있는 성숙한 조직 문화도 필요하다. 물론 어느 한 사람만의 의지로 되지 않는다.
가해자가 벌을 받고,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안다. 이러한 상식이 통할 때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