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의 국회 상정이 올 봄으로 미뤄질 수 있다는 회의적 전망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계에서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안이 이달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연내 시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를 둘러싼 담론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1일 소상공인연합회는 생계형 적합업종 입법을 촉구하고 법안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내기 위해 ‘적합업종 법제화 추진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지난달 31일 중소기업중앙회는 생계형 적합업종 토론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박성택 중기중앙회장은 “세계무대에서 경쟁해야 할 대기업이 소상공인의 생계 영역을 침범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올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경영 부담이 가중되고 있어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는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합업종 제도는 현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에 근거해 동반성장위원회 중재하에 대·중소기업 간 자율협의의 형식으로 2011년부터 운영해왔다. 하지만 자율 협의의 특성상 협의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지정 기간은 ‘3년+3년’으로 한시적 지정에 그치고,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법제화의 필요성이 꾸준히 지적돼 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소상공인 양쪽의 찬반은 어느 때보다 팽팽하다. 재계에서는 조심스레 ‘통상마찰 가능성’과 ‘산업 부작용’을 주요 논리로 내세우면서 반대하고 있다. 적합업종을 법제화할 경우 FTA나 GATT, GATS 등의 투자 조항에 위배될 수 있어 국제적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보호를 받는 업종의 경우 기존 기업이 독과점할 우려가 있고, 기술 혁신을 등한시해 국제 경쟁력이 약화되고 소비자 후생도 저하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들은 ‘통상 마찰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WTO나 FTA에서는 국가의 합리적인 정책과 주권을 인정한다”며 “업종을 선정할 때도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투명하게 적합업종을 지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에서도 연구 용역을 통해 산업 부작용과 통상마찰 가능성을 이미 검토했으며, 생계형 업종의 선정 기준에도 관련 내용을 포함한 상태”라고 밝혔다.
여론은 법제화 찬성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응답 국민의 51%가 “통상 분쟁의 위험이 있더라도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것이 시급하므로 법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통상 분쟁의 위험 때문에 법제화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전체의 13.7%에 불과했다.
업계의 바람대로 특별법이 이달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이르면 연내 시행이 가능하지만, 다음 임시 국회나 올해 중순까지 연기된다면 후속 일정도 이에 따라 줄줄이 늦춰지게 된다.
이운형 소상공인연합회 경제기획본부장은 “자유한국당 정유섭 의원이 지난 연말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면서 일정이 함께 늦춰진 감이 있다”며 “지난해 1월 발의된 더불어민주당 이훈 의원 안과 병합 논의가 조속히 이뤄질지 조금 더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시 바삐 법안을 국회에 상정해 연내 시행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효점 기자 gradua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