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 A사에 다니는 B씨는 일일 8시간 정규 근로에 일주일에 4일을 잔업을 해 일주일에 총 52시간 근무를 한다. 가끔 주문량이 많은 경우에는 주말에 8시간 특근도 한다. 하지만 조만간 주말 특근이 없어진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법안이 통과하면 회사에서 현재 1교대 체제인 근무 방식을 2교대제로 바꾸는 등 대책을 내놓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계가 발등에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불이 떨어지며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중소ㆍ영세기업까지 유예기간 없이 일률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을 우려한 경제계가 결국 여야의 근로기준법 개정합의안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개정안에는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7일 국회를 방문해 기업 규모별, 산업별로 단계적·탄력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을 다시 한 번 전달할 방침이지만, 기업들은 당장 근로시간 단축이 미칠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기업 12조 원 추가 비용 부담… 제조업 비용은 7.4조 원 =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들은 당장 연간 12조 원이 넘는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주 52시간 근무 시 현재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해선 12조3000억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로 포함되면서 발생하는 임금상승분 약 1754억 원, 인력 보충에 따른 직접노동비용 약 9조4000억 원, 법정·법정 외 복리비 등 간접노동비용 약 2조7000억 원을 합산한 비용이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대기업보단 중소기업이 충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300인 미만 사업장이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부담해야 할 비용은 연간 8조6000억 원이다.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의 70%가 중소기업의 몫인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계가 중소기업에 근로시간 단축을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한경연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력부족 현상이 심화되면 중소사업장과 영세사업장이 더욱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인건비 부담과 인력부족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중·소규모 사업장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별로는 초과근로가 가장 많은 제조업에서 총 비용의 60%에 해당하는 7조4000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제조업의 초과실근로시간은 16.4시간으로 전체 산업 평균인 3시간을 훌쩍 넘고 있다. 제조업의 비용 부담은 결국 생산성 하락과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글로벌 경쟁력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다음으로는 광업이 14.9시간으로 10시간을 넘는 수준을 보였다. 또한 부동산·임대업과 숙박·음식산업도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근로시간 단축의 영향이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은 교육서비스, 금융보험, 전기가스산업, 전문과학 산업으로 추정된다. 우광호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소정실근로시간과 초과근로시간이 많지 않고 특정 근로자가 많은 근로를 하지 않는 고른 근로시간 분포를 보이고 있어 근로시간 단축 시에도 타 산업에 비해 영향을 적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근로시간 단축 대비책 고심 =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로시간’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각 사업부문 책임자들에게 가능하면 주당 근무시간을 52시간 이내로 줄일 수 있도록 직원들을 독려하라는 권고안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와 SK, LG 역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책을 고심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법 개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만큼 결정된 사항은 없지만 법 개정에 대비해 근로시간 단축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와 LG 역시 근로시간 단축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 개정에 따른 내부 규정 마련 외에도 기업들은 근로시간을 효과적으로 관리해 업무 몰입도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탄력적인 근무시간을 도입하면서 근로시간 조정에 나선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하루 4시간 이상, 주 40시간 이상’ 근무만 지키면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자율출퇴근제’를 지난 2012년부터 시범 운영하고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근무 시간이 길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워크스마트와 워크앤밸런스에 맞게 일하도록 이미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LG유플러스는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확실히 쉬는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PC-off제, 회의 및 보고 형식의 간소화, 주변 업무를 최소화해 본연의 업무에 몰입하게 하는 등 근무환경을 개선해 상시적 초과근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행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풀무원 역시 업무량 조사를 통해 각 개인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실제 투입한 근무시간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인력계획에 반영해 적정인력을 산정하는 등 업무 몰입도를 높이는 환경을 유도하고 있다.
경총 관계자는 “우리 사회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근로자 삶의 질 제고, 고용 확대, 기업생산성 향상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시점”이라며 “후속조치 없이 근로시간 단축에만 그칠 경우 기업경쟁력에 중대한 손실이 오는 만큼 근로시간의 효율적 관리 방안을 마련해 근로시간 단축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