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으로 수학능력시험이 사상 처음으로 일주일 연기되면서 이미 문제점과 한계를 노출해온 대학 입시 제도를 이번 기회에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우리도 일본이나 미국의 SAT(Scholastic Apptitude Test)처럼 문제은행식 대입 자격고사로 전환해 학생들이 1년에 적어도 두 차례 혹은 그 이상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분석하고 보완하기보다 표를 의식한 생색내기식(式)이나 교육 공무원들의 면피성으로 교육제도나 입시제도를 바꿔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만 가중해 왔다.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며 새로 내놓은 교육 개혁 정책이나 입시제도는 오히려 풍선 효과로 사교육만 더 웃게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도 2022년부터 고교 학점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혀 벌써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일선 교사의 강의 내용이나 방식, 교육 인프라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시제도만 자꾸 바꾸는 것은 교육 소비자인 국민만 힘들게 하는 그야말로 적폐가 아닐 수 없다. 또 ‘로또’ 같은 수능시험,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망국(亡國)’ 수준으로 창궐하고 있는 사교육도 온 국민이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최고조의 적폐다.
대입제도의 근간인 현행 수능시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단판’ 승부라는 점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재수생을 양산하면서 결국 사교육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고 있다. 수능시험의 또 다른 문제점은 수학능력과 실력을 겨루는 시험이기보다는 ‘실수 안 하기 테스트’의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한두 문제만 더 틀리면 지원 가능 대학이 달라지기 때문에 주어진 짧은 시간 내에 실수하지 않고 정답을 찾아내는 연습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입시 및 사교육 문제는 이미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비는 물론, 결혼·출산, 고용, 불평등 등 사회의 많은 분야와 난마(亂麻)처럼 얽혀 있다.
가계가 적자인데도 평균보다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한 결과 빈곤하게 사는 ‘에듀푸어’가 등장했다. 무리한 사교육비 지출은 부부의 노후 대책을 가로막아 ‘에듀푸어’는 ‘실버푸어’로 이어지게 된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에서 아이 하나 키우는 데 3억~4억 원이 든다는 통계에 질려 아예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부모의 사회경제적인 지위에 따른 불평등은 교육 격차와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면서 양극화를 심화해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 시대 전 세계의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지금, 입시 제도 개선을 통한 교육 개혁은 우리의 미래가 달린 시급한 문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똑같은 내용을 암기하고 한 가지 답을 찾는 시험을 통해 평가되는 ‘공장식 대량생산’ 같은 교육은 더 이상 효용성이 없다.
교육 스타트업, 혁신 대학으로 불리는 미네르바스쿨의 스티븐 코슬린 학장은 최근 방한해 “실생활에서 거의 쓸 일이 없는 시험 보는 능력은 학생들에게 필요 없다”며 “이제는 비판적 사고, 창의성, 효율적인 상호작용과 같은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상당수 문제 해결의 최초 실마리는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체적인 초중고 교육 시스템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재설계하는 혁명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무조건 대학 졸업장에 목매지 않고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고 새로운 일감(창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젊은 층은 결혼해서 아이 낳을 생각을 하게 되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높아져 중산층이 다시 두터워지며, 은퇴 후 국민들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