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인물사전] 238. 향랑(香娘)

입력 2017-11-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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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사회의 비극적 열녀

향랑(香娘·1682~1702)은 경상도 선산부 상형곡(현 경북 구미시 형곡동)에 살던 양인 박자신(朴自申)의 딸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슬하에서 자라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정숙하고 효순하였다. 날이 갈수록 계모의 박대가 심해졌으나 조금도 성내는 기색 없이 그 뜻에 순종하였다. 17세인 1699년(숙종 25)에 같은 마을에 사는 임천순(林天順)의 아들 칠봉(七奉)과 혼인했다.

남편은 겨우 14세로 성행이 괴팍하여 향랑을 원수처럼 미워하였다. 향랑은 참고 몇 년을 같이 살다가 부득이 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계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였는 데다 남편에게서도 버림을 받아 결국 숙부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런데 숙부도 얼마 후 개가하도록 종용했다. 향랑은 하는 수 없이 다시 시댁을 찾아갔으나 남편의 횡포는 여전하고 이번엔 시아버지마저 개가를 권유했다.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향랑은 결국 죽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낙동강 아래 지주연(砥柱淵)으로 갔는데, 거기서 나무하는 한 소녀를 만났다. 그녀는 다리[髢·숱이 적은 머리에 덧대는 가발]와 짚신을 묶어 주면서 부탁하기를, “이것을 가지고 나의 부모님께 전해드려 내 죽음을 증명해주고 내가 죽거든 시체를 연못 속에서 찾으라”고 하였다. 그리고 기구한 인생사를 낱낱이 말하고 ‘산유화(山有花)’라는 노래를 지어 부른 뒤 연못에 몸을 던졌다. 이때 20세였으며 1702년(숙종 28) 9월 6일이었다. 죽은 지 14일 만에 시신이 떠올랐다고 한다.

향랑이 자살 직전에 불렀다는 산유화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하늘은 어이하여 높고도 멀며, 땅은 어이하여 넓고도 아득한가/천지가 비록 크다 하나, 이 한 몸 의탁할 곳이 없구나/차라리 이 강물에 빠져 물고기 배에 장사 지내리.’

이처럼 향랑은 오갈 데 없는 자신의 슬픈 사연을 담아 노래하였다. 이 시기 문인들은 전(傳), 한시(漢詩), 소설, 잡록 등 무려 20편이 넘는 작품으로 향랑 사건을 기록하였다. ‘경상도읍지’와 ‘숙종실록’에도 향랑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숙종실록’을 보면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향랑의 시아버지와 남편, 계모에게 벌을 주고 향랑의 행적을 조정에 보고했다는 기록이 있다.

열녀 향랑에 대한 정문(旌門)은 1704년(숙종 30) 6월 좌의정 이여(李畬)의 건의로 비로소 내려졌다. 이여는 “향랑은 시골의 무식한 여자로서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는 의리를 알아 죽음으로 스스로를 지켰고, 또 죽음을 명백히 하였으니, ‘삼강행실(三綱行實)’에 수록된 열녀라도 이보다 낫지는 않습니다. 마땅히 정표하여 풍화(風化)를 닦아야 합니다”라고 건의하였다. 숙종은 건의를 받아들여 향랑을 정녀(貞女)라 부르고 무덤 옆에 비석을 세우도록 하였다. 이로써 향랑은 열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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