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IB 인가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내 자본시장도 ‘가본 적 없는 길’의 초입에 들어섰다. 초대형IB로 선정된 증권사들이 성공적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 여부에는 낙관론과 회의론이 공존한다. 다만 초대형IB가 성공하려면 결국 ‘IB 업무의 꽃’으로 불리는 M&A 중개·자문 시장에서 국내 증권사의 위상이 지금보다 높아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 시장 참여자들이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그간 국내 M&A 시장은 가파른 성장을 이어 왔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 13조1000억 원이었던 M&A 거래 규모는 2015년 96조2000억 원으로 7배 넘게 늘었다.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2016년은 ‘최순실 사태’ 여파로 시장이 위축되긴 했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여전히 꾸준한 성장세다. 올해의 경우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이 활발해진 영향으로 전년 대비 큰 폭의 성장이 점쳐지고 있다.
문제는 성장의 과실을 대부분 외국계IB가 가져갔다는 점이다. 파이가 큰 대형 거래를 외국계가 독식했기 때문이다. M&A 시장이 최대의 호황이었던 2015년 외국계IB가 수임한 거래건수는 47건, 거래규모는 2002억 달러였다. 거래건수로는 46.1%에 불과하지만 거래 규모는 전체의 77.9%에 달하는 수치다. 같은 해 국내 증권사의 거래건수는 전체의 23.5%였지만 거래 규모는 시장 전체의 18.0%(463억8000만 달러)에 그쳤다.
지난해에도 M&A 자문 시장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시장에서 JP모간이 94억2800만 달러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켜 시장점유율 10.4%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에버코어파트너스와 프랑스계 라자드가 9.5%의 점유율로 공동 2위에 올랐고, 5위는 모건스탠리(6.9%)였다. 4위 미래에셋대우가 7.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해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5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M&A 중개·자문시장의 불균형은 이전부터 꾸준히 문제로 지적됐다. 더욱이 국내 증권사로서는 억울한 구석도 있다. 대형 거래 고객의 대부분이 글로벌 IB를 원하는 배경에 중개 역량보다는 ‘간판’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자본시장연구원이 중개·자문기업의 유형별로 M&A 거래 전후 누적수익률(CAR)을 분석한 결과 외국계IB, 국내 증권사, 회계법인 사이에 큰 차이가 없거나 일부 지표는 외국계가 낮았다. 기업들이 평판이라는 틀에 갇혀 국내 증권사보다 글로벌IB를 선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불균형적인 경쟁구도가 시장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라고 지적한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계IB는 소수의 거래만으로도 수익을 확보하고 전담 인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국내 증권사는 갈수록 거래경험과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고착될 수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당국의 지원과 증권사들의 자체적인 역량 강화가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초대형IB 인가와 함께 자기자본 4조 원 이상 증권사들에 허용되는 신용공여 업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M&A 과정에서 모자란 자금을 조달해주는 기업금융 업무를 증권사의 무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반적인 M&A 중개·자문업무뿐 아니라 기업금융 관련 업무를 확장시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전략적 포지션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