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 여성 금융인을 만난다. 6일 이투데이와 여성금융인네트워크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대한민국 여성금융인 국제 콘퍼런스’에서이다.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에 오를 만큼 유명 인사이다. 여성 금융·경제인이라면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국내 여성 금융인과 라가르드 총재의 오작교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여성 금융인의 ‘대모’ 격인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이다. 과거 국내 최초 여성 외환딜러로 국내 금융 시장에 기여한 그는 여성 금융인의 역할 확대에 힘쓰고 있다.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여성금융인네트워크 사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여성금융인네트워크는 2003년 활동을 시작한 이후 15년 가까이 여성 금융인의 역량 강화와 여성 인력에 대한 금융권 인식 변화를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 50여 명의 회장단을 포함해 16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회장단은 금융기관의 임원급(행장, 부행장, 전무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주된 사업은 포럼 개최 및 국내외 연수, 회원 간 정보 교류, 해외 금융단체와의 교류 및 협력 등이다. 정부기관장, 금융지주사 회장 등 60명이 넘는 금융권 주요 인사들이 여성금융인네트워크를 통해 여성 금융인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리더십, 협상 스킬 등 여성 금융인들이 갖춰야 할 소양에 대한 교육도 수차례 실시했다.
2015년 한·중·일 국제 콘퍼런스를 시작으로 매년 여성금융포럼을 개최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여성 금융인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40년 넘게 금융·경제에 몸담아온 김 회장은 여성을 위한 장(場)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인터뷰 내내 여성임원할당제 도입의 필요성, 유리천장·유리벽의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특히 김 회장은 라가르드 총재를 통해 국내 여성 금융인들이 희망과 자신감을 느끼길 바란다고 했다. 유리천장뿐만 아니라 유리벽에 가로막혀 있지만 언젠가 이 장벽을 깨겠다는 의지와 깰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고 싶다는 게 대모의 바람이다.
<정보·인맥·노력 ‘3박자’가 이뤄낸 라가르드 총재 섭외>
- 라가르드 총재 초청은 어떻게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예전부터 여성금융인네트워크(이하 여금넷)에서 모시고 싶었던 인물이다. 여금넷 회원 중 외국계 은행 임원이 라가르드 총재가 방한할 수 있다는 정보를 준 게 (초청 과정의) 시작이었다. 이후 최희남 IMF 상임이사에게 여금넷 콘퍼런스에 총재를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이메일을 통해 전했다. 최희남 상임이사는 기획재정부 투자풀운영위원회를 통해 알고 있던 분이다. 여성 금융인을 위한 자리라는 설명에 최 상임이사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정식 초청장을 발송했다. 초청장에는 여금넷과 국내 여성 금융인들이 유리천장을 깨려고 그동안 노력했던 히스토리와 라가르드 총재의 응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여금넷 활동 이력과 나의 경력 역시 자세하게 설명했다.”
- 라가르드 총재에게 강조한 메시지는
“라가르드 총재에게 정부에 정책적인 건의를 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여성임원지수가 낮은 나라에 속한다. 한국이 2%대인 반면, 가까운 일본도 이보다 높다. 시작 단계에서는 여성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그 비중이 줄어드는 것이다. 여성할당제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키노트 스피치에서 라가르드 총재가 그동안 경험했던 유리천장을 깬 스토리와 이 같은 정책적인 건의를 해 줬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 여성 금융인·경제인과의 점심시간도 예정돼 있다는데
“콘퍼런스 행사 이후 1시간 20분 동안 라가르드 총재가 여성 금융인, IT 전문가와 함께 점심시간을 갖는다. 여성 금융인에는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 등 은행권 부행장, 금융회사 이사 등을 초청했다. 로보어드바이저 전문가 등 IT 종사자 2명은 라가르드 총재의 요청으로 섭외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평소 핀테크에 관심이 많아 IT 강국인 한국의 여성 전문가를 초청해 달라고 요청했다.
점심시간을 갖는 동안 국내 여성 금융인들의 업무 한계점, 여성할당제 필요성 등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여성 금융인들이 유리벽에 가로막혀 있어 리테일(소매금융) 쪽으로만 업무가 쏠려 있는 현상 등을 전할 생각이다.”
- 라가르드 총재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다는데
“라가르드 총재가 평소 여성뿐만 아니라 어린이 이슈에도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다. 뇌전증을 앓는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브로치, 가방 그리고 가방에 달 수 있는 펜던트를 디자이너를 통해 제작했다. 참여자들한테도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가방을 만들어 선물할 계획이다. 뇌전증 환자에게도 수익금이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 라가르드 총재 이외에 콘퍼런스에 참석하는 외빈은
“이번 콘퍼런스에는 여성 주한대사가 대거 참석한다. 대사 초청 역시 어려웠지만, 라가르드 총재 방한과 함께 많은 분이 관심을 갖고 있다.”
<여성할당제 통한 변화 이뤄져야>
- 여성 금융인의 활동 범위는 여전히 좁다고 보나
“여성 은행장이 배출된 바 있지만 변화는 많이 없었다. 현재 여성 임원들이 별로 안 남았다. 시중은행 및 특수은행 15개사의 여성 임직원 비율은 평균 46%이지만, 임원급 이상 여성은 소수에 불과하다. 현재 금융지주사, 은행, 증권사, 보험사에 종사하는 CEO 가운데 여성은 한 명도 없다.”
- 문제점은
“해외 주요국은 다른 산업에 비해 금융권의 여성 임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국내의 경우 남성들의 ‘형(兄) 문화’, 변화를 반기지 않는 금융권 분위기가 악영향을 준다고 본다. 남성 트레이더의 비중이 높은 마켓에서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전 세계 금융 시장은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실례로 기존 금융권을 위협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행보를 보면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해결 방안은
“여성할당제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금융이 가장 발전한 영국은 금융 기업의 여성임원할당제를 단계별로 진행 중이다. 이사회에 여성이 30%는 있어야 조직이 변화한다고 한다. 여성을 상징적으로 1명만 두는 게 아니라, 30%를 채울 수 있도록 변화해야 한다.
또한 현재 관리자 직위에 있는 여성 금융인들이 후배 양성을 위한 멘토 역할도 잘 해줘야 한다. 젊은 여성 금융인들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지도와 관심이 필요하다. 여성 한 명이 CEO가 되면 오히려 폐쇄적이 될 수 있다. 여왕벌과 같은 상황에 놓여 밑에 있는 직원들을 배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협력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심어줄 필요가 있다.”
<금융권 이외에도 전 산업이 다양성·포용성 수용해야>
- 이번 정부에 기대하는 바는
“여금넷이 2003년 1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올해 14년째(2012년 12월 발족일 기준으로는 15년)이다. 정치권에 변화는 있었지만, 금융권은 안 움직이고 있다. 금융권뿐만 아니라 전 사회가 여성 인력을 확대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여성 인재 육성을 위해 양육 문제는 100%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전 세계가 다양성·포용성을 의미하는 D&I(Diversity and Inclusion)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관심은 아직 낮은 것 같다. 금융권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해당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김상경 회장은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은 성균관대를 졸업한 후 1975년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서울지점 행원으로 금융권에 입문했다. 이후 아메리칸익스프레스뱅크 서울지점 이사, 뱅크오브차이나 서울지점 자금부장·치프 딜러(Chief Dealer) 등을 역임했다.
서울시 금고전문위원, 금융감독원 금융제재심의위원회 위원, 기획재정부 투자풀운영위원회 위원 등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나는, 나를 베팅한다’, ‘환율, 제대로 알면 진짜 돈 된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