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가 22일 서울에서 열리는 가운데 미국 측을 설득할 다양한 카드는 보이지 않고, 뭉개기 전략에 치중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미국은 지난달 12일 미국의 심각한 대(對) 한국 무역적자를 지적하면서 한미 FTA의 개정 및 수정 가능성을 포함한 협정 운영 상황을 검토하고자 공동위원회 개최를 요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양국 간 불공정 무역의 대표 사례로 자동차와 철강을 거론하며 압박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한미 FTA는 양국 모두에 호혜적 결과를 낳았다며 반박해 왔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한미 정상회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미 FTA의 상호 호혜성을 강조하는 등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미국은 사실상의 재협상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개정을 논의하기에 앞서 양국이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을 먼저 하자고 제안할 방침이다.
정부 출범 60일이 넘도록 통상교섭수장 공백이 이어지면서 FTA 개정 협상에 나서기에 앞서 미국 측 논리를 파악하고 한국 측 입장을 정리하는 데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시간을 벌기 위함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협상에 돌입하면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줄 것은 주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뚜렷한 ‘협상카드’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 당시 방미 수행경제인단이 총 40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협상카드를 너무 빨리 써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미 협상에서 기본적인 미국의 우위를 감안하면 방어선이 한참 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제안은 수출 증가에 힘입어 힘겨운 회복을 시도하던 우리 경제에 거대한 암초가 아닐 수 없지만 그간 정부는 미국이 요구한 것이 전체 협정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 바꾸는 ‘재협상(renegotiation)’이 아니라고 의미를 축소해 왔다.
미국의 한미 FTA 개정 요구는 4일 취임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첫 시험대다. 김 본부장은 한미 FTA 체결 협상을 시작부터 최종 합의문 서명까지 이끈 통상 전문가다.
김 본부장은 취임 일성으로 산업부 통상 담당 공무원들에게 “수동적이고 수세적인 골키퍼 정신은 당장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로서는 외교부에 내줄 뻔했던 통상 기능을 간신히 지켜낸 상황에서 4년 만에 부활한 통상교섭본부로 미국 등 강대국의 통상 압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통상 기능을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질 수 있어서다.
미국이 한미 FTA를 일방 폐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의지가 워낙 강력한 만큼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미국이 한미 FTA를 일방 폐기할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다만, FTA로 혜택을 입은 미국 기업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있어, 실제로 미국 정부가 일방 폐기에 나설지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여러 차례 언급한 무역적자를 이유로 한미 FTA 협정 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한국 정부는 양국 모두 FTA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미국 정부의 속내를 파악하고 협상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카드를 면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