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시민권과 관련된 문제이지만, 그들의 눈물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다만 단 한 가지 같은 점이 있다면, 내 나라의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하는 일은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누군가의 인생을 살릴 수도, 혹은 망칠 수도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귀화 선수의 문제가 한창 쟁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귀화 선수의 문제가 논란이 될 때면 늘 ‘스포츠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논리와 ‘그들이 어떻게 우리 국민인가?’라는 논리가 한결같이 등장해 대립한다. 하지만 본인은 이와 같은 대립을 보면서 종종 실소를 금치 못하곤 한다. 어느 한쪽 논리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가 그 이유가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국적 선택의 문제는 한 국가의 일원으로서의 합당하고도 적법한 자격을 얻게 되는, 일견 성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결과에 대해 엄청난 책임을 묻는 결정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흘러도 문제를 대하는 양극단의 찬반 논리는 여전히 참으로 비이성적이고 자극적이기만 하다. 즉, 귀화 선수에 대한 찬반 논리가 복잡하고 첨예해 보일지 몰라도, 결국 이는 ‘경기력 향상주의’와 ‘순혈주의’의 대립으로 요약되는 것이 아닌가?
귀화 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 특별귀화 절차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획득하게 된다. 그들이 귀화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와 같은 특수목적 기반의 귀화 신청을 2010년 개정된 국적법에 따라 인정하고 있다. 즉, 일정 자격과 조건만 갖춘다면 스포츠 선수들이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는 데에는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포츠 선수의 귀화는 역사적으로는 이미 20년이 넘었고 국내로 귀화한 선수만 해도 10명이 넘었다. 물론 국내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한 선수도 여럿이고, 해외의 경우는 선수의 귀화가 국내보다 훨씬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나름의 역사성과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선수 귀화는 왜 늘 첨예한 대립을 유발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귀화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도덕적·합리적 원칙이 아닌 그들의 ‘이익(interest)’에만 기반을 둔 논리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것에 대한 완고한 닫힌 논리는 그들의 어떤 의견이라도 결국 ‘성적’과 ‘민족주의’라는 절대 논리 간 상충의 문제로 비약해 버린다.
따라서 스포츠 선수의 귀화에 대한 논의는 마치 양극단을 향해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와 같다. 이는 일견 우리 사회의 모습과 같다. 합의가 없는 진영논리, 선악이 극명한 흑백논리, 편 가르기, 좌우 논리의 문제가 과정 자체가 정수이자, 결과보다 기필코 우선되어야 하는 스포츠에마저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결국, 선수 귀화에 대한 찬반 논리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가 스포츠의 영역으로 건너와서 스포츠라는 유니폼을 입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본인은 이와 관련된 문제를 단순 스포츠의 문제로 간주하지 않고 우리 사회 문제의 확장이자 연장이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