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상선과 현대증권 등 주요 계열사를 분리하면서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됐다.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친족 간 계열 분리와 유동성 위기에 따른 구조조정을 피하지 못하면서 자산규모 2조5600억 원의 중견기업으로 새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1987년 자산 규모 1위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후 29년 만이다. 2003년 타계한 정몽헌 회장을 이어 그룹을 이끌고 있는 현정은 회장은 그룹 내 유일한 캐시카우를 창출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의 상징과 같은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그룹 재건에 나설 계획이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상징인 대북 사업 이어받아 =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기억되는 정주영 명예회장은 한국의 경제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인이다. 아버지 몰래 소를 팔아 마련한 70원으로 서울로 상경해 쌀집 종업원부터 시작한 정 명예회장은 1947년 현대건설의 전신인 현대토건을 설립하면서 근대 한국 경제 성장의 궤를 같이했다. 이후 현대그룹은 1987년 국내 자산 규모 1위로 우뚝 섰다.
현대그룹이 갖는 의미가 남다른 것은 남북 경제협력 사업 때문이다. 정 명예회장은 1998년 소 1001마리를 싣고 북한을 방문했고, 이어 현대아산을 세워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사업 등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전담했다. 현대아산의 대북사업은 정주영에서 아들 정몽헌으로 이어지면서 현대그룹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2000년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왕자의 난이 벌어졌고 현대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현대차그룹과 정몽헌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으로 분리됐다. 이후 현대중공업그룹(정몽준), 현대백화점(정몽근), 현대금융기업(정몽일) 등과 친족 간 계열분리 과정을 겪었다.
◇끊임없는 구조조정… 유동성 위기 극복 못해 = 현정은 회장이 2003년 타계한 정몽헌 회장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현대그룹의 대외적인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현 회장이 직접 사재를 털어가며 출자를 하는 등 그룹 전체 역량을 대북 사업에 쏟았지만, 금강산 관광은 정치적인 이슈로 막혔고, 2013년에는 유동성 위기까지 겹쳤다. 현대그룹은 2013년 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3조 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내놓으며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 과정을 견뎠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던 현대상선은 글로벌 불황의 파도를 넘지 못했고 300억 원대의 사재 출연 결단까지 했던 현 회장은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대주주 무상감자에 동의하며 현대그룹의 계열사에서 떠나보냈다. 이밖에도 유동성 확보를 위해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를 매각한 현대그룹은 올해 4월 1일을 기준으로 계열회사 21개, 자산총액 12조8000억 원으로 자산총액 순위 30위의 대기업집단에서 올 10월 계열회사는 12개, 자산총액은 2조5643억 원 수준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제외돼 중견기업이 됐다.
◇단촐해진 지배구조… 현 회장, 주요 계열사 직접 관리 = 현대상선의 계열 분리로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 현대그룹은 현재 쓰리비, 에이치에스티, 현대경제연구원, 홈텍스타일코리아,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 현대글로벌, 현대아산,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엘앤알, 현대유엔아이, 현대종합연수원, 현대투자네트워크 등 12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현 회장은 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등과 함께 현대글로벌(현 회장 일가 100%),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아산, 현대유엔아이 등 핵심 계열사에 대한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다.
현 회장이 해운업 불황이라는 위기에 제때 대응을 못하면서 그룹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현대상선을 떠나보냈다는 것은 뼈아픈 과실로 남았다. 현대그룹은 향후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 등 남은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그룹 재건 작업을 펼칠 계획이다. 주요 계열사의 실적은 긍정적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난해 매출 1조3480억 원, 영업이익 1567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는 글로벌 시장에서 역량을 더욱 강화해 매출액 1조5000억 원 이상, 수주액 1조7000억 원, 영업이익 1700억 원을 목표로 제시했다. 현대유엔아이 역시 작년 980억1858만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등 견조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