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글로벌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성공시대’를 앞두고 있다. 고집스러운 투자를 바탕으로 남들이 관심 갖지 않던 시장에 한발 먼저 진입하는 차별화 전략으로 한국 의약품 산업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120년 국내 제약 역사에서 불과 14년 연혁의 바이오기업이 단일 의약품의 수출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파죽지세다.
21일 셀트리온에 따르면 ‘램시마’의 누적 수출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 램시마는 얀센이 판매 중인 류마티스관절염치료제 ‘레미케이드’와 같은 성분의 바이오시밀러다.
램시마는 지난 2014년부터 국내에서 생산되는 의약품 중 수출 실적 1위도 기록 중이다. 기존에는 다국적제약사 얀센백신(옛 베르나바이오텍)이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에 판매하는 인플루엔자 예방백신 ‘퀸박셈’이 수출 실적 1위를 차지했지만 셀트리온이 2014년부터 1위 자리를 탈환했다. 해외 제약사가 보유하던 수출 1위 타이틀을 국내 업체가 되찾아온 셈이다.
내수 시장 의존도가 절대적인 국내제약사들의 현실을 감안하면 램시마의 수출 성과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약품 생산액 16조9696억원 중 수출 실적은 3조3348억원으로 19.7%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퀸박셈의 수출실적 914억원이 포함된 수치다. 지난해 램시마의 수출액 4970억원은 전체 의약품 수출실적의 14.9%에 해당한다. 램시마는 바이오의약품의 수출 실적 중 54.3%를 차지하며 국내 바이오의약품의 해외 진출을 주도했다.
지난 2012년 7월 국내 허가를 받은 램시마는 2013년부터 유럽, 일본, 남미 등 70여개국에서 허가받았다. 유럽 시장에서 지난 2분기 말 기준 동일 성분 시장에서 점유율을 40%까지 끌어올릴 정도로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 중이다.
특히 램시마는 오는 11월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 미국 시장 데뷔를 앞두고 있어 수출 실적은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램시마의 오리지널 제품 ‘레미케이드’는 미국에서 연간 5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 중이다. 레미케이드 뿐만 아니라 같은 적응증을 대상으로 하는 TNF-알파 억제제 시장에도 침투 효과가 기대된다. TNF-알파 억제제의 미국 시장 규모는 약 20조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산술적으로 TNF-알파 억제제 시장의 10%만 차지해도 연간 2조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램시마와 같은 복제약의 경우 이미 오리지널 의약품이 구축한 시장을 점차적으로 잠식하면서 시장 영향력을 확대한다. 램시마는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 제품 중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뛰어든다는 점에서 시장 선점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램시마와 같은 성분의 바이오시밀러를 준비 중이지만 셀트리온보다 약 3년 가량 뒤쳐진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상 램시마가 3년 정도는 바이오시밀러 시장에서 독점 판매한다는 의미다.
램시마는 시장에 가장 먼저 진입했다는 장점 이외에도 임상시험을 통해 확고한 신뢰도를 구축했다. 최근 유럽소화기학회(UEGW)에서 발표된 램시마의 교체투여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장기 임상시험 ‘노르웨이 스위칭 임상(The NOR-SWITCH Study)’ 결과가 또 다른 무기다.
환자 500명을 대상으로 최소 6개월 간 레미케이드를 투약하다 램시마로 교체 투여한 환자군과 래미케이드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은 환자군으로 나눠 약 52주에 걸쳐 투약 효과 및 안전성을 비교 관찰한 결과 모든 적응증에 대해 두 군간 효과나 부작용 모두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사실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다국적제약사들은 그동안 바이오시밀러가 오리지널과 완전히 같지 않은 만큼 교체투여시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지 않으면 오리지널 의약품을 사용하던 환자에게 바이오시밀러로 바꿔 치료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제기해 왔다.
셀트리온 측은 "램시마와 오리지널의약품 간 효과 및 안전성 측면의 동등성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는 임상 결과가 이번 장기 연구를 통해 제시됨으로써 교체 처방을 위한 명백한 임상적 근거가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셀트리온에 따르면 미국은 공보험과 사보험이 시장을 양분하는 구조다. 의약품 공시가격은 존재하지만 사보험 시장은 보험사와 병원간의 약가 협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사보험시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보건의료체제에서 환자와 보험사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 도입에 대한 요구가 큰 상황이다. 램시마 북미 지역 판매를 담당하는 화이자는 램시마를 레미케이드보다 15%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키로 했다.
램시마는 유럽에서도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 중이다. 지난 1분기 기준 노르웨이에서는 전체 TNF-알파 억제제 시장에서 점유율 59%를 차지했고 동일 성분 시장에서는 9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나타냈다.
미국 시장은 국내 제약기업이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LG생명과학, 일양약품, 부광약품 등이 많은 국내 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아직 미국 시장에서 성공사례를 배출하지 못했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올해 11월로 확정된 램시마의 미국 출시가 이루어지면, 램시마의 누적 수출액은 더욱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램시마 단일 품목으로 연매출 1조원 이상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조만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램시마는 국내 시장에서도 순항 중이다. 의약품 조사업체 IMS헬스의 자료에 따르면, 셀트리온의 램시마는 올해 상반기 74억원의 매출로 전년동기대비 32.3% 늘었다.
램시마는 국내 TNF-α 억제제 시장에서 올해 상반기 10.26%의 점유율을 기록, 처음으로 10%를 돌파했다. 2013년 4분기에 5%를 넘어섰고 지난 2분기에 점유율을 10.55%까지 끌어올렸다.
레미케이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브렌시스’ 등을 포함한 인플랙시맵 시장에서 램시마는 지난 2분기 점유율이 29.96%에 달했다. 유럽 시장보다는 점유율이 낮지만 오리지널 의약품과의 약가 차이를 감안하면 주목할만한 성장세라는 게 시장의 평가다.
램시마의 선전은 셀트리온이 지난 14년 동안 고집스럽게 한 우물만 판 결과 거둔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성과다.
셀트리온이 설립된 2000년대 초반 세계 항체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다국적제약사들이 특허를 바탕으로 독점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셀트리온은 신약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일반적인 제약사들의 비즈니스 접근법과는 달리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통한 사업기반 구축(CMO사업)→자체제품 개발’이라는 역발상 전략을 추진했다.
다른 회사의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하면서 초기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설비 운영 노하우, 품질관리 기술 등을 축적했다. 셀트리온은 CMO 사업을 통해 2007년부터 3년 동안 292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수입은 바이오시밀러와 바이오신약 등 자체 개발 개발을 위한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최근 바이오시밀러 2종(트룩시마, 허쥬마)의 미국ㆍ캐나다 독점 유통사로 테바를 선정하며 후속 제품의 글로벌 공략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트룩시마는 바이오젠이 개발하고 로슈가 판매 중인 항체의약품 '맙테라'의 바이오시밀러 제품으로 셀트리온은 지난해 10월 유럽의약청(EMA)에 판매허가를 신청했다. 허쥬마는 로슈가 판매하는 유방암치료용 항체 바이오의약품 ‘허셉틴’의 바이오시밀러다. 셀트리온은 2014년 1월 허쥬마의 국내 판매허가를 받았고 오는 4분기 중 유럽 의약품청(EMA)에 허쥬마의 판매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 대표는 “셀트리온의 램시마가 유럽 시장에서 시장 장악력을 확인한 만큼 미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동일한 영역을 동시다발로 두드리는 국내기업들과는 달리 선제적이고 과감한 도전을 통해 차별화된 색깔을 냈다는 점에서 국내 제약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