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 챔피언십]“마지막홀에서 눈물이 나서 티샷을 하지 못할 뻔 했다”...박세리 은퇴식

입력 2016-10-13 19:55 수정 2016-10-1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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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박세리. 사진=JNA 정진직 포토
▲인터뷰를 하는 박세리. 사진=JNA 정진직 포토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는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 클럽 오션 코스 (파72·6364야드)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 1라운드를 마치고 패및 관계자들과 함께 열린 은퇴식을 가졌다.

▲다음은 박세리의 일문일답

-은퇴하는 것이 실감나나.

오늘 연습하고 티 박스에 오르기 전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1번홀 티박스에 올라갔는데 많은 팬들이 ‘세리 사랑해’가 써 있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계셨다. 눈물이 날 줄 몰랐는데 눈물이 났다.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많이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때부터 (은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팬들도 평소와 달랐다. 시합 중에 평소처럼 플레이 하다가도 울컥울컥 했던 것 같다. 마지막 18번 티에 섰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티샷 못할 뻔 했다. 이렇게 많은 감정이 교차할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은퇴식 때는 정말 좋았다. 우승한 것 보다 더 기뻤다. 최고의 순간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무사히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인 것 같다.

-오늘 팬이 캐디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분이 어땠나.

-오래 전부터 최고의 팬인 분이다. 나를 항상 응원해주신다. 1년에 한번이지만 이 대회에 경기하러 오면 꼭 오셨다. 그 언니도 골프 치는 내 모습이 익숙할 텐데 이제 그 모습을 못 봐서 섭섭해했다. 첫 홀부터 같이 울었다. 언니가 ‘우리가 5년만 젊었으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을 텐데, 미국에도 갔을텐데’하며 아쉬워했다. 시원섭섭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뭐라고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미국 아칸소에 사는 팬이 있는데 일부러 미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응원하고 계시다. 정말 감사하다.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

-공식적인 선수 생활을 마치게 된다. 생활에 변화가 있나.

잠은 계속 잘 못잤다. 리우 올림픽 후 은퇴가 가까워져 오면서 계속 그랬던 것 같다. 어젯밤은 더 특별히 심란했다. 시합을 앞두고 있는 생활이 익숙해져 있어서 그랬는지 은퇴가 실감이 나진 않았다. (은퇴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닌데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 생각이 없었고, 너무 많은 팬들이 와줘서 정말 기쁜데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은퇴식 하면서 많이 감동 받았다. 운 기억 밖에 없다. 어떤 선수도 나처럼 행복한 은퇴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다. 오늘밤, 아니 이번 주 내내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다.

-내일 2라운드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나.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 하셨다. 성적이 좋으면 마지막 라운드까지 하지 않겠냐고 하셨는데, 나는 정해진 대로 아쉬움 없이 내 결정에 따를 것이다. 만약 내일 친다고 하면…그건 아닌 것 같다. (웃음)

-공식적으로 기권 의사를 밝혔나.

그렇다.

-은퇴식에서 본인을 골프에 세계로 입문시킨 아버지와 긴 포옹을 했는데.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알고계시리라 생각한다. 나도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은퇴를 했다고 생각하니 나와 같은 마음이실 거라 생각한다. 좋을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었다. 아버지 덕에 이렇게 성장한 것 같다. 어렵게 골프를 시작했지만 가족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 인생, 골프 선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의 심장 같은 분이셨다. 골프를 계속하고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가족 때문이다. 너무나 감사하다.

▲은퇴식 도중에 눈물을 흘리는 박세리. 사진=KLPGA 박준석 포토
▲은퇴식 도중에 눈물을 흘리는 박세리. 사진=KLPGA 박준석 포토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을 돌아보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골프계에 돌풍을 일으킨 것과 다름없다. 연장전에서 해저드에 공이 빠졌던 상황에서 그때와 다르게 플레이했다면 어떤 결과가 됐을지 생각해봤나.

그때는 잃을게 없다고 생각했고, 즐기자고 생각했다. 나는 모르는 나라에서 온 신인이었고 그 주에 좋은 경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US여자오픈 우승이 꿈이었는데 연장전을 위해 18번 홀에 갔을 때 절반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그 때 헤저드에서 다르게 플레이 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4라운드를 마치고 공동 선두였을 때 그때까지 좋은 경기를 해왔다고 생각했다. 공이 헤저드에 빠졌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에게 도전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해보고 아니면 다음에는 그렇게 플레이 안하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때 그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박세리는 없었을 것이다.

-본인은 은퇴 하지만 ‘세리키즈’들이 LPGA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다.

마음이 너무 든든하다. 만약 지금의 ‘세리키즈’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골프도 없었을 것 같다. 나로 시작했지만 나로 끝나지 않았으면 생각했다. 앞으로 나를 보고 시작한 선수들이 ‘세리키즈’로 불리지만 또 다른 선수의 키즈가 많이 나와서 오랫동안 한국 골프를 이끌어주었으면 한다.

-주최측에서 은퇴식을 앞두고 ‘SERI’ ‘Thank you SERI’라고 쓰여진 모자를 준비했고, 먼저 은퇴한 선수들도 자리를 해주었다. 기분이 어땠나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다 느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 은퇴식에서 영상을 보며 많은 감정을 느꼈다. 지난 20년간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고 성과도 있었다. 복잡한 감정이 오고갔다. 나는 제 2의 인생을 이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신인 때 불안하기도 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런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많은 분들이 성원해줘서 감사하다.

▲박세리 은퇴식에 박찬호가 찾았다. 사진=JNA 정진직 포토
▲박세리 은퇴식에 박찬호가 찾았다. 사진=JNA 정진직 포토
-은퇴식에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특히 오늘 박찬호 선수가 만사를 제쳐두고 왔다고 한다. ‘박세리는 동반자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박세리에게 박찬호는 어떤 사람인가.

정말 나와 같이 갈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다(웃음). 박찬호 선수와 내가 미국에 진출한 건 아마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90년대는 한국 스포츠 선수들이 외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쉬운 선택이 아닌데 둘 다 새로운 도전을 했다. 이후 서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후배들이 꿈을 키울 수 있지 않았나 한다. 선구자라는 것은 쉽지 않다. 둘 다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 있는데 후배들이 있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우리 둘 다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종목은 다르지만 같은 방향으로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서로 돕는 스포츠인이 되고 싶다.

-박세리 선수는 이 대회 초대 챔피언이고, 은퇴 경기를 한 이 대회는 본인의 메인 후원사 대회이기도 하다. 어떤 느낌이 드는지.

처음 LPGA투어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했는데 그 대회에서 내가 초대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나의 메인 후원사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은퇴 경기를 했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것 같다. 하나은행은 글로벌 스폰서십을 하고 있는 등 골프를 위해 많은 후원과 노력을 하고 있다. 단단하고 훌륭한 회사 소속으로 선수로써 마지막 경기를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감사 드린다. 내가 은퇴 후 후배 선수들을 위해 이루고 싶은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프로골퍼 박세리가 아닌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박세리로 배워가며 노력하겠다. 지금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또 다른 좋은 일로 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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