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키워드] 톰 클랜시의 ‘테크노 스릴러’-북핵에 대한 무력감과 소설적 희망

입력 2016-09-22 11:05 수정 2016-09-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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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주간

북한의 5차 핵실험과 계속되는 그 여진이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 톰 클랜시(Tom Clansy, 1947~2013)의 한 소설을 생각하게 했다. 아니, 북한의 핵이 이번 실험으로 피부에 닿는 위협이 됐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無力感)이 오래전에 읽어 제목은 잊어먹고 줄거리만 가물가물한 이 소설을 다시 뇌리에 떠올리게 했다.

일본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가 또다시 패망한다는 큰 줄거리로 검색했더니 제목은 ‘Debt of Honor’. 1994년에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적과 동지’라는 표지를 달고 3권으로 나뉘어 이듬해에 나왔다.

이 책을 비롯해 ‘붉은 10월’ ‘긴급명령’ ‘패트리어트 게임’ ‘썸 오브 올 피어스’ 등 그의 소설 여러 권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주인공인 CIA 정보분석관 잭 라이언 박사의 역할은 ‘인디아나 존스’로도 유명한 해리슨 포드가 맡았다. TV에서 여전히 잭 라이언 시리즈를 틀어주는 건 몇 번 봐도 재미있다는 사람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감히’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일본 측 주인공은 일본의 재벌그룹 총수 야마타 라이조. 2차 세계대전 끝 무렵, 눈앞에 다가온 미군의 사이판 상륙을 눈 뜨고는 못 본다는 심정으로 사이판 해안 절벽에서 투신자살한 부부의 아들이다.

시대 배경은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가 최고에 이르렀던 1980년대 중반. 미·일 간 무역전쟁이 시작돼 일본 경제가 침체되고 반미감정이 생겨나자 야마타는 아버지의 명예 회복과 미국에 복수할 때가 왔다고 믿고 세력을 규합, 전쟁을 통한 ‘대동아공영권’ 재건에 나선다. (그래서 제목이 ‘Debt of Honor’인가 생각해 본다.)

야마타 일파는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한 후 자위대를 앞세워 2차 대전 후 미국령이 된 사이판을 점령하고, 핵잠수함 2척, 핵항모 2척을 파괴하는 등 미국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한다. 무력도발과 함께 미국 증권시장 전산망을 해킹하고 연방준비제도(FRB) 이사장을 암살해 미국 경제를 일대 혼란에 빠트리는 등 양동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야마타 일파는 미국에 항복을 요구하지만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승진한 잭 라이언의 기민하고 정확한 정세 판단과 치밀한 후속 조치로 승리는 미국 것이 된다. 잭 라이언은 전쟁 중 부통령이 유고가 되자 그 뒤를 잇는다.

이 과정에서 사이판에 침투한 CIA 요원들(단 2명!)의 은밀하면서도 과감한 작전이 눈부시다. 이들은 사이판 공항 부근 숲에 숨어서 핵무기를 실은 일본 항공기가 착륙할 때 초강력 플래시 불빛을 발사, 조종사들의 눈을 순간적으로 멀게 해 항공기에 치명적 손상을 가져오게 한다. 야마타는 항공기 손상이 조종사들의 조작 미숙으로 야기된 것으로만 믿게 된다. 일본의 핵무기 공격이 무력화된 찰나로, 내 생각엔 이 소설의 백미(白眉)였다.

이 두 명의 요원은 또 야마타 일파가 강제 구금한 온건파 정치인을 구출,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과의 협상 대표로 나오게 한다. 톰 클랜시는 다른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부 군사 및 무기 전문가와 정보 기술자들만 알고 있는 첨단 무기와 최신 정보체계를 여기서도 주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른바 ‘테크노 스릴러(Techno Thriller)’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는다.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쟁 중에 아들 형제를 미군에 잃은 일본 민항기 조종사가 상·하원 연석회의가 열리고 있는 워싱턴 의사당에 보잉747을 몰고 가미가제식으로 돌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계의 요인 대부분을 몰살한다. 불과 몇 분 전 부통령 취임식을 한 잭 라이언이 먼지를 덮어쓴 채 대통령에 취임하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톰 클랜시(1947~2013)
▲톰 클랜시(1947~2013)

톰 클랜시는 이런 소설 한 권을 쓰고 4000만 달러(약 440억 원)를 판권으로 받았다고 한다. 내는 족족 수십 권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으니 얼마나 벌어들였을까.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런 테크노 스릴러를 써보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싸드’를 쓴 김진명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올해 안으로 북한은 여섯 번째 핵실험을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미국까지 날려 보낼 수 있는 소형 핵탄두 개발도 눈앞에 다가왔다고 한다. 잠수함에서도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준이 돼 믿었던 사드도 효용이 떨어지게 됐다고 기사는 전한다. 국방, 외교 관료들에 이어 전문가마다 대응책을 내놓지만 탁상공론 같고, 실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톰 클랜시의 소설 ‘Debt of honor’ 초판.
▲톰 클랜시의 소설 ‘Debt of honor’ 초판.
“전쟁이 나면 자기네도 죽는데 전쟁을 먼저 벌이겠어?” 혹은 “중국 관광객 몇 만 명이 매일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중국이 북한이 핵을 쏘는 것을 방관하겠어?” 같은 주워들은 논리로 전쟁은 안 일어날 거라고 나를 달래고 아내와 여섯 살 딸을 키우는 딸 부부를 안심시켜 보지만 나부터 전과는 다르다. 소설에서 야마타라는 미친 자가 전쟁을 일으켰듯 북한에도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미친 자가 없다고 누가 보장하느냐 말이다.

이런 무력감이 우리에게도 잭 라이언처럼 분석력과 판단력이 뛰어난 전략적 지도자가 나타나고, 용감하고 헌신적이며 애국심으로만 무장된 두 명의 CIA 요원 같은 전사들이 적지에 들어가 은밀한 작전으로 저들의 핵무기를 쓸모없게 만들면 좋겠다는 소설적 희망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소설 줄거리는 인터넷에 소개된 것을 다시 요약한 것이다. 이야기가 엉성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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