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도로 올 1월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한국 부총재직’이 결국 날아갔다.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 프로젝트 참여 기회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AIIB는 중국이 주도해 아시아 인프라 시장을 관장하는 신설 국제금융기구로 한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다 어렵사리 참여했다. 정부는 AIIB가 총재ㆍ부총재 등 집행부 중심으로 움직이는 만큼 부총재직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4조 원 이상의 출자금을 부담한 한국이 원래 배정됐던 부총재직을 잃고 그보다 급이 낮은 국장 자리를 얻는 데 그쳤다.
1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7월 말 국장급 직위 공모 접수를 마감한 AIIB는 일부 보직 인사를 발표하면서 회계감사국장에 유재훈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을 선임했다. 회계감사국장은 AIIB의 재정집행 계획을 수립하고 회계 및 재무보고서 작성, 내부통제 등을 담당하는 자리다.
기재부는 또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AIIB 지도부에 조언을 제공하는 비상임 자문단의 일원으로 활동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문단은 비상근직이어서 우리나라의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될지 미지수다.
앞서 AIIB는 홍기택(64) 전 산업은행 회장(AIIB 위험관리 담당 부총재)이 대우조선해양 대출 개입 관련 폭로성 발언 이후 논란을 빚으며, 6월 말 휴직하자 홍 전 회장이 맡던 보직을 국장급으로 강등시키고 재무국장 직을 재무 담당 부총재로 승격시키는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홍 전 회장의 낙마로 공석이 된 부총재 자리는 프랑스 출신의 티에리 드 롱구에마 아시아개발은행(ADB) 전 부총재가 낙점됐다. AIIB는 15일께 드 롱구에마 부총재 신임을 공식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AIIB에서 중국ㆍ인도ㆍ러시아ㆍ독일에 이어 다섯째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분담금이 37억 달러(약 4조1092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부총재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한국의 AIIB 내 위상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AIIB 의사결정에 한국 영향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되는데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이 수주를 다툴 때 AIIB에 부총재가 있느냐 없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당국은 홍 전 회장이 사실상 퇴출되고 후임도 한국인이 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한국 몫의 부총재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대응하며 사태 덮기에 급급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의 안이한 대처도 문제지만 전문성 없는 인물을 국제기구에 앉힌 것이 결과적으로 국가 차원의 큰 손실을 낳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