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30분 이투데이 편집국. 4명의 수습기자들이 느닷없이 회의실로 소집됐다. 멀뚱히 모여있는 수습기자들에게 내려진 지령.
“지원자를 받는다. 속초에 가서 포켓몬 잡아와라.”
본 기자가 누군가. 고등학교 때 소지하던 PMP에 ‘포켓몬스터 골드버전’을 설치하고 자율학습 시간마다 몰래 플레이했던 일명 ‘겜 덕후’가 아니던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속초행을 자원했다. 그렇게 포켓몬 트레이너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가자! '속초마을'로
일단 목적지는 한국 유일의 ‘포켓몬 고’ 플레이 가능 도시인 속초시. 닌텐도 게임 ‘포켓몬스터’의 시작 지점은 일본 관동지방의 ‘태초마을’인데, 게임 덕후들은 이를 본떠 '속초마을'로 부른다. 이투데이 뉴미디어부 정용부 기자와 수습 동기인 정용욱 기자는 ‘포켓몬 고 페이스북 라이브팀’(이하 라이브팀)이 되어 생중계 진행의 특명을 맡게 되었다.
여의도에서 속초로 가는 길은 4시간 정도가 걸렸다. 인터넷 검색으로 포켓몬 잡을 사전 궁리를 하느라 가는 시간 내내 멀미를 겪었다. 앞으로 순탄치 않을 포켓몬 트레이너 세계의 예고편처럼 느껴졌다. 오전 10시에 출발한 ‘포켓몬 고’ 라이브팀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속초 엑스포 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은 역시 한국 ‘포켓몬 고’의 성지였다. 공원 광장엔 이미 많은 사람이 포켓몬을 잡기 위해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며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포켓몬 고 열풍을 체험하고 취재하러 나온 타 언론사의 기자들도 제법 발견할 수 있었다. 자, 시작이다! 이투데이 ‘포켓몬 고’ 라이브 팀은 페이스북 방송을 개시하고 본격적인 ‘포켓몬 고’ 체험에 돌입했다.
‘포켓몬 고’, 단순하지만 심오한 세계
포켓몬 고는 비교적 단순한 게임이다. 게임의 주 목표는 포켓몬의 포획. 포켓몬이 출몰하는 지역을 플레이어가 배회하면 일정 확률로 화면에 포켓몬이 등장한다. 등장한 포켓몬을 터치하면 스마트폰 카메라 화면 속 증강현실로 포켓몬이 나타난다. 이 포켓몬에 몬스터볼을 던지면 포켓몬이 포획되는 것이 게임 방식이다. 잡은 포켓몬은 ‘포켓몬 도감’에 기록되기 때문에 성취욕과 도전욕구를 마구 자극한다.
처음 게임을 실행했을 때 우리 라이브팀은 꽤 애를 먹었다. 그렇게나 많다는 포켓몬이 도무지 주변에서 찾을 수 없었다. 우선은 기본 제공받은 아이템 ‘향로’를 사용했다. 이를 사용하면 주위에 야생 포켓몬이 나타날 확률이 높아진다. 게임 내 아이템들은 게임 진행 중 습득하거나 요금지불을 통해 구매할 수도 있다. 아이템의 효과는 뛰어났다. 즉시 인근에 ‘셀러’, ‘주뱃’, ‘슬리프’ 등의 어릴 적 만화로 봤던 포켓몬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일단 마주치는 모든 포켓몬을 포획하는 데 주력했다.
포켓몬을 잡으려면 발견한 포켓몬에 몬스터볼을 던지면 된다. 다만 여기엔 몇 가지 테크닉이 필요하다. 볼을 너무 약하게, 혹은 강하게 던지면 포켓몬으로부터 멀어져 볼을 낭비하게 되므로 적당한 힘으로 던져야 한다. 혹은 볼을 몇 번 회전시킨 후 던지면 커브볼이 나가는데, 이런 커브볼로 포획 시에는 추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잡으려는 포켓몬에게 표시된 CP(컴뱃 파워ㆍ포켓몬의 전투력)가 높을수록 잡기가 어렵고, 몬스터 주위에 표시되는 원의 색에 따라서도 포획 난이도가 다르다. 몬스터가 보이면 볼을 던져 잡으면 되는 단순한 게임인데도 파고들수록 어렵고 복잡한 면이 있다.
'포켓몬 고' 고수를 만나다
생중계 진행 중 한 시청자로부터 라이브팀을 만나고 싶다는 요청을 받았다. 라이브팀은 즉시 그가 위치한 속초 엑스포타워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만난 시청자는 27세의 남성 A씨. 그는 이미 레벨 10의 포켓몬 트레이너였다. 10여 마리를 모은 초라한 라이브팀의 포켓몬 도감과는 달리 그의 도감에는 50마리 이상의 포켓몬이 수집되어 있었다. 하루 전부터 게임을 시작했다는 A씨는 초보 트레이너인 라이브팀이 모르는 정보들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줬다.
그를 만나 알게된 것 중 하나는 바로 '체육관 전투'. 레벨 5가 넘으면 해당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사람이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다보면 누군가가 점령하고 있는 체육관이 보인다. 이곳을 터치하면 체육관을 점령한 플레이어와 그가 소지한 포켓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체육관을 점거한 플레이어는 ‘용기’, ‘신비’, ‘본능’이라는 세 진영 중 한 곳의 소속인데, 모든 플레이어는 레벨5 이상부터 세 진영 중 한 곳을 자신의 진영으로 택할 수 있다. 체육관에서 본인과 같은 진영의 플레이어를 만나면 연습 전투를, 다른 진영의 플레이어를 만나면 체육관 전투를 벌여 체육관을 새로 점령할 수도 있다.
체육관 전투의 방식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전투가 벌어지면 대전 상대의 포켓몬을 터치하여 공격을 하거나, 혹은 화면을 좌우로 스크롤하며 상대 공격을 회피할 수 있다. 포켓몬의 속성과 플레이어의 실력 등에 따라 승패가 갈리기도 하지만, 역시 승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포켓몬의 전투력인 CP다. 전투에서 라이브 팀의 허약한 포켓몬들은 CP가 높았던 상대의 한 포켓몬에게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A씨는 라이브팀과 동행하며 포켓몬 잡기에 많은 도움을 줬다. 볼을 충전해주는 주유소와 비슷한 개념인 ‘포켓스톱’의 활용법, 게임 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포켓몬 알’의 획득 방법 등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알은 플레이어의 이동거리가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부화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속초에 포켓몬 붐이 일어난 지 고작 이틀 만에 알을 대신 부화시켜주는 아르바이트가 등장했다는 사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창조경제"라는 농담이 오갔다.
정말이지 놀라운 게임! 그러나 아직은 아쉬운 면도
직접해 보니 굉장한 게임이었다. 단순히 신기술을 도입한 게 전부가 아니다. 이 게임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석이 있다. 바닷가를 거닐면 조개를 모티브로 한 물 포켓몬 ‘셀러’가 나왔고, 모래사장을 지나가면 두더지를 본 딴 땅 포켓몬 ‘디그다’가 나왔다. 말로는 들었지만 직접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놀라움의 절정은 A씨가 암모나이트 화석을 모티브로 한 포켓몬 ‘암나이트’를 잡았을 때였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A씨는 깜짝 놀라더니 외쳤다.
“여러분! 옆을 보세요. 암나이트 잡은 곳 근처에 진짜 화석 박물관이 있어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풀숲 위에 잉어 포켓몬 ‘잉어킹’이 나타난다거나, 닭강정 위에 여우 포켓몬 ‘이브이’가 나타날 때 그랬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 진짜로 아쉬운 부분은 게임성이었다. ‘포켓몬스터 시리즈’ 게임의 전통적인 메인 콘텐츠는 ‘포획’과 ‘전투’다. 두 콘텐츠 모두 플레이어가 소지한 포켓몬의 활약을 기반으로 한다. 트레이너 간 전투에서는 나름대로 비슷한 맛을 냈지만, 포획 부분이 다소 아쉬웠다. ‘포켓몬스터’에서는 플레이어의 포켓몬들과 야생 포켓몬과의 치열한 전투 끝에 어렵사리 포켓몬을 획득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것이 통째로 사라졌다. 몬스터볼을 던지는 기교들로 이를 대체하려는 시도는 높이 사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증강현실' 게임의 미래를 꿈꾸며
약 10여 년 전쯤. 당시 나름대로 첨단 기술의 산물이었던 ‘다마고치’라는 게임이 있었다. 손바닥만한 게임기 속 도트그래픽으로 표현된 가상 애완동물에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당시 ‘다마고치’게임은 밥 먹이고 뒤처리해주는 정도가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이후 ‘다마고치’에 ‘대전’이라는 개념이 추가된 ‘디지몬’이 등장하면서, 이 새로운 게임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포켓몬 고’의 화려한 등장은 마치 ‘다마고치’의 태동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증강현실을 적용한 이 게임은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포켓몬 고’ 열풍은 무궁무진한 잠재 가능성을 가진 게임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게임의 미래. 도감 속 15마리의 포켓몬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왠지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