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보선 시인은 김 군이 가는 하늘 길에 시 ‘갈색 가방이 있던 역’을 바쳤다. ‘…갈색 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전지전능의 황금 열쇠여/ 어느 제복의 주머니에 숨어 있건 당장 모습을 나타내렴/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이것 봐. 멀쩡하잖아, 결국 자기 잘못이라니까”…/
시인은 아침에 산 컵라면도 먹지 못하고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고로 숨진 김 군에 애절했고 열심히 일만 한 김 군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회사 경영진에 분노했다. 김 군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것은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배운 대로, 시킨 대로 했을 뿐이다”며 아들을 책임감 있게 키운 것을 후회한다고 절규했다.
김 군 어머니의 절규는 이내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의 주인공 엄마의 대사 “나는 준호(아들)가 매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서워”와 중첩된다. 1등을 해야만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4등 하는 아들이 코치에게 폭행을 당해도 등수만 올리라고 한 엄마의 말이다.
어머니는 왜 아들을 책임감 있게 키운 것에 자책하고, 엄마는 왜 4등 하는 아들이 폭력에 시달리는데도 1등 수영 선수가 되길 바랐을까. 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법과 탈법을 일삼아도 1등을 하고 승자만 되면 모든 것을 얻는 1등 지상주의와 승자 독식주의가 2016년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전관 예우, 탈세 등 온갖 부정과 편법을 일삼아 엄청난 부를 축적한 변호사들,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 유가족들이 피눈물을 쏟는데도 돈을 받고 회사가 원하는 실험결과를 도출해낸 대학 교수들, 수많은 종업원을 죽음이나 다름없는 해고로 길거리에 내모는 상황을 만들었으면서도 사전 정보로 이득을 취한 회사 경영자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1등을 한 승자(?)이며 1% 상류층이다.
수많은 젊은이가 결혼부터 인간관계까지 포기의 숫자를 늘려가며 ‘대한민국은 헬조선’이라고 절망하는데도 사리사욕만 취하는 적지 않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마저 묵살하며 이윤의 무한증식만을 꾀하는 상당수 재벌들, 납세의무를 비웃기라도 하듯 조세 회피처를 찾아 나서는 일부 상류층, 대다수 스태프와 단역, 조연들이 생계 위험에 처했는데도 엄청난 몸값만을 요구하는 상당수 스타들, 수많은 사람이 뛰어난 실력과 능력에도 불구하고 학벌 때문에 좌절하는데 학맥과 인맥만으로 승승장구하는 적지 않은 지도층 인사들…. 이들 역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승자 독식주의, 결과 지상주의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수혜자인 이들 1%는 장애인, 청소년과 노인, 여성, 비정규직 종업원을 비롯한 이 땅의 사회적 약자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기는커녕 뉴욕대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교수가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서 지적한 것처럼 사회적 약자들에게 주는 것 없이 이들의 것을 끝없이 빼앗기만 하는 ‘탈취에 의한 축적’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다.
왜? 양심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불법, 탈법마저 서슴지 않고 모든 것을 독식하려는 이 땅의 1% 상류층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양심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