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가장 많은 영화인들이 결집하는 칸은 ‘예술’과 ‘돈’이 활발하게 오고가는 두 얼굴의 도시다. 한쪽에서 ‘영화라는 예술’을 고고하게 논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영화라는 상품’을 사고팔기 위한 물밑경쟁을 펼친다. 영화를 비싼 가격에 팔려는 셀러(seller)와,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바이어(buyer)들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은 종종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국내 외화 수입사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아뿔싸, 충동구매!”
최근 몇 년 동안 칸 마켓을 찾는 한국 바이어들의 수는 2-3배로 증가했다. ‘비긴어게인’과 ‘위플래쉬’의 흥행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소위 아트버스터라고 불리는 대박 예술영화가 출몰하면서 소규모 자본을 들고 뛰어드는 업자들이 많아졌다. 한국영화 제작비용의 증가도 외화 수입증가에 한 몫 했다. 한국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 30-60억원. 예술영화의 수입가격은 대개 1만~5만 달러(1116만~5580만원) 수준. 투자 대비 수익이 괜찮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규모가 있는 투자배급사들도 하나 둘 외화 수입에 뛰어든 탓이다.
뛰는 건 경쟁률. 덩달아 뛰는 영화 가격. 또 함께 뛰는 건 외화 수입업자의 한숨이다. 떨어지는 건 이윤을 낼 확률일 뿐. 눈치 빠른 해외 셀러들은 한국에 불고 있는 이러한 외화수입과열 현상을 이미 간파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인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늘었다. 문제는 이를 덥석 무는 한국수입사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수입사는 ‘봉’이라는 이야기가 이래서 나온다.
다행히(?) 돈이 최우선이 아닌 경우도 많다. 현명하고 이름 있는 해외 제작사일수록 돈보다는 수입사의 질을 살핀다. 수입사가 자신들의 영화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마케팅해서 흥행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거다. 이는 계약이 주로 ‘미니멈 로열티+러닝 로열티’ 형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으로, ‘영화가 흥행하자 러닝 로열티를 안 주기 위해 문을 닫아버린’ 몇몇 한국 수입사의 악평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 바닥에서 중요한 게 신뢰다.
“완성품 아니라도, 일단 사고 보자”
올해에는 경쟁부문에 초청된 21개 작품 대부분이 영화제 전에 이미 판매 계약을 완료했다. 수입업자들 선택의 폭은 그만큼 좁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바이어들은 왜 득달같이 칸으로 달려갈까. 미리 구매한 영화가 어떻게 나왔나를 확인하기 위한 게 첫 번째, 이제 막 제작에 들어가는 작품을 구매하기 위해서가 두 번째다. 해외마켓에서는 감독-주연배우-시놉시스-제작계획서만 보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품을 보지 않고 선주문을 하는 형태로, 이건 흡사 도박에 가깝다. 뚜껑을 연 영화가 예상과 완전히 다른 작품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당연히 영화의 평가에 따라 바이어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짐 자무쉬의 ‘패터슨’을 영화제 전에 미리 찜한 그린나래미디어와 다르덴 형제의 ‘언노운 걸’을 지난해 구매한 오드는 영화에 대한 호평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을 지난해 장바구니에 담았던 엣나인필름은 영화의 혹평에 잠시 시무룩했다가, 영화가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면서 반전의 주인공이 된 경우다.
수입사들을 울리는 또 하나는 일명 ‘끼워팔기’다. A를 사고 싶으면 B와 C도 함께 구매해야 한다,고 조건을 거는 셀러가 적지 않다. 바이어로서는 화제가 되는 A를 구매하고 싶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B와 C도 끌어안아야 하는 셈이다. 경쟁은 치열하고, 수입 단가는 오르고, ‘끼워 팔기’도 성행하니, 개업한지 얼마 안 가 사라지는 수입사도 많다. 시장의 속내를 잘 모르고 무턱대고 뛰어들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보면, 국내 영화시장의 상황이 더욱 아쉬워지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어렵게 모신 작품들이 국내 극장에서 ‘퐁당퐁당’(교차상영)을 당하거나, 상영관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가 다반사라니. 아무리 좋은 영화를 수입해도 틀 공간이 없으면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수입업자들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