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문을 열고 낮은 시트에 오른다. 바닥에 주저 앉은 듯 시야가 낮다. 그럼에도 낮고 평평하게 배치한 대시보드 등 인간공학적 설계 덕분에 앞 시야는 문제가 없다. 포르쉐 전통대로 스티어링 칼럼 왼편에 포르쉐 차체처럼 생긴 키를 꽂고 돌려 시동을 건다. “바르릉.” 3.0리터로 배기량을 낮추고 터보차저를 얹었지만 고성능 스포츠카 본연의 꿀성대를 자랑한다.
다양한 주행모드와 설정이 가능하지만 기본 세팅은 노멀. 스티어링 휠 위 다이얼을 돌려 노멀과 스포트, 스포트 플러스, 인디비주얼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스포트에서는 스타트/스톱 시스템이 비활성화되고 배기가 더 커지며 스포트 플러스에서는 다이내믹 섀시까지 활성화돼 가장 강력한 전투자세를 취한다. 가속페달에 힘을 실으면 묵직한 페달이 일정한 답력으로 밟힌다. 더불어 의도한 딱 그만큼씩만 엔진회전수가 오르며 부드럽고 묵직하게 차체를 내몬다.
시내를 내차 몰 듯 차분하게 내달렸다. 서행을 하다 이따금 가고 서기도 했다. 단수 낮은 저속에서 거친 반응을 보이던 옛날 PDK가 아니다. 아주 가끔 톱니를 거칠게 무는 감각이 없지 않지만 그건 백에 한 번쯤. 가속페달을 온화하게 밟으면 2천rpm 아래에서 변속하며 최대한 부드럽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생각보다 안락한 승차감에 조금 놀랐다.
평일과 주말을 오가며 언제든 탈 수 있는 스포츠카로는, 포르쉐를 따라갈 자가 없다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고급 라텍스로 감싼 차돌을, 아스팔트 위에서 부드럽게 굴리는 기분이다. 단단하지만 경박하지 않았다. 지금 달리고 있는 도로상태가 어떤지 가감 없이 전하지만 기분 나쁜 진동과 충격은 99퍼센트 걸러냈다.
포르쉐는 차체를 10밀리미터 낮출 수 있는 전자식 댐핑 컨트롤 시스템인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를 이번부터 모든 카레라에 기본으로 넣었다. 더 빠르게 코너를 공략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충격흡수 범위를 넓힌 새 쇼크업소버로 승차감까지 챙긴 것이다.
이 정도 승차감이라면 단단한 차에 기겁하는 고상한 사모님이라도 문제 없겠다. 설마 세단만큼 편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이 차는 포르쉐 911이다. 포르쉐에는 두 번의 큰 사건이 있었다. 공랭식에서 수랭식으로의 진화가 첫 번째, 그리고 배기량을 낮추고 터보차저를 얹은 엔진을 올린 이번이 두 번째쯤 될 것이다. 신형 911 카레라 S 카브리올레는 3.0리터 터보 가솔린엔진으로 420마력을 낸다. 구형보다 20마력 높아졌다.
토크 또한 6.1 올라간 51.0kgm. 게다가 1천700부터 시작해 5천rpm까지 이어진다. 세상에나! 0→시속 100km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겨우 4.1초. 참고로911 카레라 S는 3.9초로 카레라 패밀리 가운데 마의 4초 벽을 허문 첫 모델이 됐다. 그럼에도 연비는 더 좋아졌다. 구형보다 100킬로미터를 달리는데 최대 1리터를 덜 먹는다. 뼈와 살을 깎고 소재를 바꿔 무게를 줄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며 메커니즘을 최적화한 결과다. 가고 서길 반복하는 도로 위에서 빠르고 적극적으로 엔진을 끄고 켜며 자연보호운동에도 동참했다.
물론 버튼으로 오토 스타트/스톱 기능을 차단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정교하고 매끈하게 반응하는 덕분이다. 최대한 빨리 높은 단수로 톱니를 바꿔 무는 덕에 시속 100km 주행은 1천700rpm을 약간 넘어 7단으로 달렸다. 한적한 도로 위에서 늘 일정하게 반응하는 묵직한 가속페달을 즈려 밟았다. 드로틀을 열 때마다 터빈을 돌려대며 공기를 빨아대는 ‘쉭~쉭’ 소리가 등뒤에서 ‘크게’ 들렸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댈 때 나는 딱 그 소리였다.
가속페달로 진공청소기를 더 세게 돌려댈수록 속도계 바늘은 빠르게 치솟았다. 포악한 엔진출력이 뒷바퀴를 맹렬하게 돌려대고 아스팔트를 짓이겨도 움직임은 언제나 묵직하면서도 안정적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차체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듯 든든하다. 작정하고 풀 드로틀을 하면 꼬리뼈가 간질간질한 뒷바퀴굴림 특유의 느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언제나 안정감이 한 수 위였다.
속도와 비례하며 엔진회전수는 거침없이 올랐다. 8천rpm 중 레드존 7천200을 넘어 7천500까지 엔진을 돌려댔다. 5천부터 묵직하게 살아나는 바리톤 음색이 6천을 넘어서면서 테너로 변하다 7천을 넘기면 무지막지한 바이러스 사운드로 지축을 울려댄다. 기어노브 뒤 머플러 그림이 그려진 가변배기 버튼을 누르면 소리는 더 강력하게 마음을 후벼 판다.
터빈의 공기 빨아대는 소리와 엔진사운드 및 배기사운드가 모여 독특한 음색을 만들었다. 코너링 잔치가 펼쳐진 코스로 들어섰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다이얼을 돌려 스포트 플러스로 주행모드를 맞춘다. 팽팽하고 무거워진 스티어링, 탄탄해진 하체, 적극적인 엔진회전수 등이 모여 전투력을 높였다. 컴파스로 그린 듯 딱 원하는 만큼 앞머리를 틀어대며 거침없이 코너를 공략했다. 껌처럼 찰싹 달라붙은 타이어는 스키드음도 거의 내지 않고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명민한 기본기에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리어액슬 스티어링이 빛을 발했다. 리어액슬에 달린 두 개의 액추에이터로 뒷바퀴를 최대 2도나 돌려대는 이 시스템은 더 빠르고 안전하게 굽이진 길을 드나드는 마법의 아이템인 셈이다.
깜빡 했다. 이 모델은 911 카레라 S 카브리올레. 시속 60km 속도에서 15초 만에 소프트톱 루프를 여닫을 수 있다. 살랑살랑 바람의 노래를 만끽하며 대자연을 품고 달리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911이다. 데일리 오픈 스포츠카는 대단히 잘 달리고 돌며 서지만 대단히 안락하거나 공간이 여유롭지도 않다.
휴대폰 하나 놓을 자리가 없어 쩔쩔맬 수도 있는(도어포켓과 조수석 대시보드에서 넣었다 뺄 수 있는 컵홀더 두 개, 조그마한 센터콘솔, 짐공간으로 활용해야 할 뒷좌석) 이 차는, 엄연히 그리고 명백한 진짜 스포츠카다. 대체로 멋지지만 이따금 신경질적인 소리도 내는 외계표 진공청소기는 80살 할아버지가 몰아도 빠르고 멋지게 달릴 수 있는 마성의 스포츠카다. 자연흡기를 버리고 터보차저를 선택한 포르쉐를 너무 미워하지 않아도 될 만큼.
글 이병진 사진 김범석
LOVE
물리력을 거스르는 코너링과 담대한 출력, 그리고 포르쉐 엠블럼
HATE
공기 흡입 소리. 컨디션에 따라 때론 단점이 된다
VERDICT
자연흡기엔진을 포기한 포르쉐를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좋다
Porsche 911 Carrera s Cabriolet
Price16,490만원
Engine 2981cc F6 가솔린 터보, 420마력@6500rpm, 51.0kg·m@1700~5000rpm
Transmission 7단 PDK, RWD
Performance 0→100초 4.1초, 306km/h, 10.7km/ℓ, CO₂ 182g/km
Weight 1,60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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