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가 떠나면 여의도의 강세장은 저물까. 자본시장의 중심은 여의도란 등호에 사선이 그어지고 있다. 증권·운용사들이 하나둘 여의도에서 짐을 싸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았다. 자본의 전국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대신증권 황소상, 명동으로 이전 = 황소상은 증시에서 강세장을 뜻한다. 약세장을 뜻하는 곰과 대비되는 상징물이다. 여의도 대신증권 앞에 있는 황소상은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가 세웠으며, 1994년 김행신 전남대 교수가 제작했다.
그러나 이 황소는 올해 말 여의도를 떠난다. 대신증권은 서울 중구 삼일대로의 옛 명동 중앙극장 터로 이전하면서 황소를 함께 몰고 간다. 여의도를 가장 오래 지킨 누렁이는 새로운 곳에서 새 밭을 일군다. 현재 여의도에는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대신증권에 각각 황소상이 있다.
서울 중구에 자리잡는 증권사는 대신증권이 처음은 아니다. 이곳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증권사가 찾아왔다. 삼성증권의 전신인 한일투자금융은 1982년 회사를 설립하면서 여의도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 빌딩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 1992년 삼성그룹에 편입되면서 상호를 삼성증권으로 바꿨다. 사옥은 2002년 종로타워, 2009년 태평로 삼성본관빌딩으로 각각 이전했다.
유안타증권은 을지로와 여의도를 오갔다. 유안타증권은 1985년 일국증권에서 동양증권으로 사명을 변경한 뒤 1994년 을지로에서 여의도로 본점을 옮겼다. 그러다 동양현대종금과 합병한 이후인 2004년 여의도에서 을지로로 다시 터를 바꿨다.
최근 중구에서 새 시대를 맞고 있는 곳은 미래에셋증권이다. 여의도에 있던 미래에셋증권은 2011년 서울 중구 을지로의 센터원빌딩 사옥을 완공하면서 이곳으로 이전했다. 미래에셋증권은 대우증권 인수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두 회사가 합병하면 8조원대의 자기자본을 갖춘 대형 증권사가 탄생한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자본시장의 중심축이 여의도가 아닌 중구로 옮겨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내놓는다.
전직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업은 여전히 규제산업인 것은 맞지만, 과거보다는 증권사의 주체성이 커지고 있다”며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있는 여의도에 붙어 있을 필요성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의 한 임원은 “해외 주요 투자자들은 한국을 찾을 때 주로 강남이나 을지로, 명동 쪽에 머문다”며 “증권사들이 단순 트레이딩에서 벗어나 투자은행(IB) 부문으로 사업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여의도에 머무를 필요가 없어진 배경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자산운용업에서는 탈(脫)여의도 회사가 실적 좋아 = 자산운용사들의 최근 성과는 여의도를 벗어난 곳이 상위권을 차지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 4일 기준 한국펀드평가 펀드 스퀘어의 자료를 보면, 주식형 공모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45개) 중 1위는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이 차지했다. 이 회사의 수익률은 27.56%다. 자산운용사 평균인 3.51%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을 포함, 상위 5개 운용사 중 3곳이 여의도 밖에 본사를 두고 있다. 수익률 2위인 메리츠자산운용(21.87%)은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있다. 5위인 에셋플러스자산운용(11.78%)의 본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다.
메리츠자산운용은 지난 2013년 금융기관으로는 이례적으로 여의도를 떠나 북촌 한옥 마을로 본사를 옮겼다. 뉴욕 월가의 한국인 펀드매니저였던 존 리가 대표로 선임된 직후였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은 2013년 판교로 이전한 뒤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불명확한 정보까지 얽혀 있는 여의도를 떠나, 기업·자산의 가치에 근거한 독자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 좋은 성적의 배경이지 않을까 싶다”라는 평가를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