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봄은 매우 짧다. 4월부터 6월까지 겨우내 쌓인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봄이 찾아온다. 7, 8월에 이르러 기온이 오르면 완연한 여름이 펼쳐진다. 여름철 낮에는 반소매나 얇은 티셔츠 복장으로 다녀도 좋을 정도로 따뜻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도 잠시. 여름이 지나면 언제 지나는지도 모를 짧은 가을과 함께 이내 혹독한 겨울이 찾아든다.
그런데 ‘알래스카의 여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관측되면서 다가올 혹한에 대비하는 정유업계의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보인다. ‘알래스카의 여름’은 지난해 정유업계와 석유화학 업계의 실적 호조를 빗대 한 정유사 CEO가 언급하면서 화제가 된 말이다. 그는 7~8월 잠깐 날씨가 쾌청하다가 금세 혹독한 겨울이 찾아오는 알래스카의 여름처럼 반짝 호조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다가올 긴 겨울에 대비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대응 노력을 지속하자고 강조했다.
정유업계는 지난해 예상치를 뛰어넘는 영업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의 연간 영업이익은 5조원을 넘어 2011년 이후 4년 만의 역대급 실적을 기록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정유사들의 성과는 실적만큼이나 내용 면에서도 좋았다. 특히 2011년과 달리 저유가 상황에서 실적 개선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 2014년 국제 유가 급락에 1조5000억원 규모로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낸 정유사들은 2015년 저유가 기조가 이어졌음에도 호실적을 달성했다. ‘고유가=고마진’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실적은 저유가에도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이끌어냈다.
정유사들이 실적 반등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유가 하락으로 석유제품 수요가 늘면서 정제마진이 개선된 데다 정유사들의 체질개선 노력도 한몫했다. 정유사들은 저유가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고도화 설비 비율을 높이고 수입처 다변화 작업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 고부가가치 제품의 비중을 늘림으로써 실적 향상에 힘을 보탰다.
정유사 실적에 직결되는 정제마진 강세는 올해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글로벌 업체들의 정유설비 신규 증설에도 가동률은 올해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고, 저유가로 수요 증가도 예상되고 있다. 또 원유판매가격(OSP)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보여 국내 정유사들이 원유를 사들이는 비용도 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사 실적에 우호적인 환경, 즉 ‘알래스카의 여름’이 애초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다가올 혹한에 대비하려는 노력에 정유사들이 한층 더 힘을 실어야 한다. 원유 외에 다른 대안을 지금의 저유가 시기에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천수답’ 환경을 탓하며 위기론만 되풀이하고 있을 것이다. 다가올 악재에도 충분히 이익을 낼 수 있는 자생력을 기르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