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저계급론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부의 크기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나뉜다는 내용이다. 즉, 얼마나 ‘돈 많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가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이 자조적인 표현이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대석학 토마 피케티 교수도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성장률 둔화로 인해 노동을 통한 수익보다 과거의 부로부터 얻는 수익이 더 중요해진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현재 FA를 체결한 19명의 계약 총액은 무려 723억원이 넘는다. 역대 최대 규모다. 수저계급론에 따르면 가히 ‘금수저’ 급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의 ‘정금화(正金化)’의 시작은 투박하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았던 ‘사금(砂金)’, 즉 흙 속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현재 KBO규정에 따르면 선수들은 FA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 9시즌을 뛰어야 한다. 4년제 대학졸업자에 한해서는 8시즌을 뛰어도 FA 자격이 주어진다. 통상 2년간의 군 생활을 포함한다면, 최소 10년 이상 선수 생활을 해야만 FA 자격을 획득할 수 있으며, 20세부터 프로생활을 시작했다면 30살이 넘어야 FA가 될 수 있는 것이다. 30세. 선수에게는 황혼기에 접어드는 시점이다. 그들이 정금같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10년이라는 흙을 토해내는 사금의 추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스포츠에서 선수들은 구단과 함께 상품 및 서비스의 공급자이자, 구단에게 고용된 내부 고객이다. 즉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단방향적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받는 관중석의 고객들과는 다르게, 선수들은 구단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양쪽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중간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선수가 잘된다는 것은 공급자인 구단과 소비자인 관중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필요조건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작금의 프로스포츠는 선수가 잘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는가? 사금에서 정금으로 성장할 수 있을 만큼 수직 이동이 가능한 토양인가?
스포츠만큼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이 그대로 투영되는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스포츠정신이라 함은 시상대에 오르는 기쁨을 혼자 만끽하는 승자 독식이 아니다. 오히려 시상대에 오르기 위해 땀과 눈물을 닦고 있는, 뒤처진 누군가에게 넉넉한 손길을 줄 수 있는 정신이다. 과정이 무시된 스포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크레디트 스위스(Credit Suisse)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상위 5%가 전체의 52%, 상위 10%가 전체의 63%에 달하는 부를 독식하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과 같이 소수가 전체의 부를 급속도로 잠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한다. 프로야구의 21억 연봉과 2700만원의 최저연봉을 보며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피케티 교수는 양극화 해결을 위해 부에 대한 과세 강화를 통한 균형적 성장을 주장했다. 즉 이는 선수들의 균형적 수직 성장을 위한 튼튼한 뿌리, 좋은 기후, 적당한 햇빛과 물과 같은 강력하고 근본적인 제도의 시행을 의미할 것이다. ‘부자 선수-가난한 선수’, ‘부자 구단-가난한 구단’이 상생할 수 있는 선진화된 시스템과 제도가 필요하다. KBO와 구단이 깊이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필자는 정확히 1년 전에도 프로야구 FA에 대해 우려하는 글을 투고한 적이 있었지만, 1년 동안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묻고 싶다. 프로야구, 상생에 대한 해답은 무엇인가? 금수저의 독식인가, 모두의 번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