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질 좋다는 저수지 한쪽
먹장구름 고단한 바람을 끌고 간다
아니, 바람이 먹장구름 밀고 간다고나 할까
발걸음 지치면 숨어 있던 돌부리 더 커져 입질이 시작된다
하얗게 부풀어 오른 기포가 하나둘 가라앉으며,
따라 운동화 한짝이 가라앉고 소주병이 가라앉고
오르가즘이 가라앉고 사직서가 가라앉고 통장이 가라앉는다
막상 중요한 나의 미끼는
번번이 음습한 빛의 침전 속에 결빙되기 일쑤다
과연 남은 하루를 온전히 안심할 수 있을까
바람은 물결도 끌고 간다
다른 물결이 명퇴 당한 그 자리를 메운다
물결들은 송사리 떼처럼 차가운 허방을 헤매고 있다
작은 어항의 기억은 투명한 유리 울타리를 벗어나야 하리라
저수지 주변에는 빛 바랜 사진 누런 테두리처럼
제 몸을 제 관으로 맞춰 놓은 고목들이 구겨져 있다
먹장구름 어깨에서 더 무거운 짐을 풀면
잠복기가 긴 감기처럼 콜록 콜록
숨어 있던 입질이 다시 시작된다
감기 바이러스 걸린 그물이 천천히 물가에 던져지고
그물에서 비 맞은 비늘이 반짝거린다
고단하게 벌렁거리는 아가미 사이에서,
애써 웃는 가장의 눈 속에서
뜨거운 빗물이 흘러내린다
아직 감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구나
파란 핏줄들이 걸어갈 길만큼
저수지 물가에 고여 가만가만 만성의 피로와 숙취와
가시지 않는 열을 조용히 방생하자
이내, 감기 바이러스는 비밀스런 물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 시집 '소통의 계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