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조세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세금을 덜 낼지를 고민한다. 일부는 탈세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비단 개인적인 욕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번 지적되는 유사·중복 사업에 경제적 타당성을 속이면서 무리하게 진행하는 각종 공사. 다수가 반대하는 사업 밀어붙이기, 불합리한 복지체계까지. 정부의 무능이 한몫한다. 이런 정부의 예산을 제대로 감시해야 할 국회는 한술 더 떠 누더기 예산을 만들어버린다.
무능한 정부와 나쁜 국회가 만들어낸 ‘총체적 불신’이 세금을 내기 아까운 진짜 이유다.
정부는 조만간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다고 한다. 국회는 이르면 10월 중순 이전에 심사를 시작해 12월 1일 본회의에 올리기로 했다. 좋게 생각하고 싶어도 걱정이 앞선다.
가장 우려되는 건 ‘밀실 심사’다. 여야는 쟁점이 생길 때마다 밀실에서 논의해왔다. 어떻게, 왜 그런 예산을 결정했는지 알 길이 없고 그 일에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지난 7월 추경 심사 때도 그랬다. 11조8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심사하는 데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딱 세 명이 예결위 내 소소위(小小委)를 만들어 비공개로 했다. 단 한 장의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2015년도 예산안을 논의했던 작년 소소위에선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39조원에 달하는 삭감·보류 사업 70건을 세 명이 협상해 뚝딱 해치웠다. 그야말로 ‘깜깜이’, ‘부실’ 예산이다.
정부 재정은 항상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 수요와 공급의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여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게 예산 심사다. 허접한 심사를 거친 예산은 허투루 쓰일 가능성도 그만큼 높은 법이다.
더군다나 내년도 예산은 ‘총선용’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물밑에선 벌써부터 국회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한 푼이라도 더 가져오려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있었던 정부와 새누리당 간 당정협의에선 SOC사업 등 당이 대놓고 선심성 예산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름의 명분은 있겠지만 누가 봐도 총선을 의식한 행위임에 분명하다. 이런 의원들의 행태는 해를 거듭해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DC 국회 주변에는 ‘페이’라는 이름의 돼지 한 마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예산 낭비에 반대하는 시민모임(CAGW)’이 선심·낭비·중복성 예산을 폭로하는 ‘돼지책(Pig Book·피그북)’을 발간하면서 기자회견장에 상징적으로 데려온 것이다.
돼지책이란 이름은 ‘포크 배럴(Pork Barrel·돼지 여물통)’에서 따왔다. 남북전쟁 이후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따내는 것을 보고 과거 남부 지주들이 노예들에게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던져주면 한꺼번에 몰려드는 모습을 비유한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나랏일을 하라고 뽑아 놓은 국민의 대표이지 돼지가 아니다. 최소한 우리 국회엔 이런 돼지가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