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반세기를 함께한 라면의 역사 속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비운의 라면도 많다. 1960년대에 20대를 보낸 이들에게 가장 먼저 꼽히는 추억의 라면은 바로 ‘왈순마’다. ‘왈순마’는 지금의 농심이 1965년 서울 대방동에 공장을 세우고 출시한 첫 제품이었다.
‘왈순마’는 1968년 농심(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이 만들어 베트남전쟁 당시 군수 물자로 수출됐다. 모델은 배우 강부자였다. 후발 주자였던 롯데공업주식회사는 삼양식품과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고, 한판 승부를 벌이기 위해 ‘왈순마’에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당시 거금 750만원 상당의 경품을 걸고 ‘왈순마’ 홍보행사를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삼양라면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던 ‘왈순마’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법원으로부터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상표사용금지처분 결정을 받은 것. 만화가 정운경씨가 자신의 작품 ‘왈순아지매’의 모작이라며, 당시 롯데공업주식회사 신춘호 대표를 상대로 상표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렇게 왈순마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왈순마’ 외에도 농심이 그동안 내놓은 라면 중 ‘시락면’(74년), ‘농심라면’(75년), ‘브이라면’(81년), ‘까만소’(85년), ‘느타리라면’(89년) 등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삼양라면의 대표 추억의 라면으로는 ‘우유라면’과 ‘이백냥’이 꼽힌다. 1980년에 선보인 우유라면은 우유를 면 반죽에 섞은 라면으로, 끓이고 나면 국물에 우유의 부드러운 맛이 우러나는 라면이었다.
이후 얼큰하고 매콤한 맛의 ‘신라면’이 1986년 출시되자마자 매콤한 맛에 대한 선호가 늘어나면서, 당시 라면 시장이 순한 맛과 매콤한 맛으로 양분되는 듯 했으나 결국 순한 맛의 패배로 ‘우유라면’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신라면’이 나온 이듬해 삼양식품도 ‘이백냥’을 출시했으나 ‘신라면’ 같은 인기를 얻지 못해 단종됐다. ‘이백냥’은 쇠고기 육수의 진한 맛과 풍성한 양념 맛이 잘 조화된 고급 제품이다. 현재까지 과거의 맛을 잊지 못해 재출시 요청이 유독 많은 제품으로 꼽힌다.
오뚜기 역시 지난 2000년 초 매운맛을 표방한 ‘빨개면’을 출시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명작으로 추억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은 출시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라면이 출시되고 단종되는 순환이 이뤄지고 있다”며 “소비자의 입맛 유행과 변화를 반영한 제품만이 살아 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