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 임금의 생일이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25년(1443) 계해 12월 30일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중략)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만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과거시험에 내게 했다. 세종 28년(1446) 12월 26일 이조에 전지(傳旨)하기를 “금후로는 이과(吏科)와 이전(吏典)의 취재(取才) 때 훈민정음도 아울러 시험해 뽑게 하되, 비록 의리(義理)는 통하지 못하더라도 능히 합자(合字)하는 사람을 뽑게 하라” 하였다.
이듬해에도 세종은 “함길도(함경도) 자제로서 관리시험에 응시하는 자는 다른 도의 예에 따라 6재(六才)를 시험하되 점수를 갑절로 주도록 하고, 다음 식년(式年)부터 시작하되 먼저 훈민정음을 시험하여 입격한 자에게만 다른 시험을 보게 할 것이며, 각 관아의 관리 시험에도 모두 훈민정음을 시험하도록 하라”고 명했다. 세종은 대간(臺諫)의 죄를 언문으로 써서 의금부와 승정원에 보이기도 했다.
숙종은 ‘훈민정음 후서(後序)’에서 이렇게 상찬했다. “삼가 우리 세종대왕께서는 타고난 성스러운 자질이 요순보다도 높아 예악과 문물이 찬란히 구비되었는데도 우리나라의 말과 소리가 중국과 달라 어리석은 백성이 뜻을 펴지 못함을 우려하셨다. 그리하여 정사를 돌보시는 여가에 새로 28자를 만들어 밝게 후세 사람들에게 보여 주셨으니 대개 쉽게 배워 날로 쓰는 데 편리하게 해 주시려는 것이었다. (중략) 이는 진실로 대성인(大聖人)이 하시는 바는 그렇게 만들려고 기필하지 않아도 지극한 도리에 합치되는 것이다. 아, 아름답도다. 아, 훌륭하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