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함에 따라 대한민국은 또 새로운 총리감을 구해야 하게 됐다. 2월 15일 취임부터 석 달도 되지 않아 물러나게 됐으니 본인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큰 불행이다.
그동안 승승장구해온 사람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자살 이후 전개돼온 상황을 납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때 흠집이 드러나 ‘불량 완구’라고 놀리던 사람들은 금품 수수의혹이 제기된 이후에는 ‘완전 구라’ ‘완전 구려’라고 비아냥댔고, 잇따른 해명과 부인을 거짓말이라고 믿기에 이르렀다.
이 총리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그 ‘막중한’ 어감과 의미에 질리는 기분이었다. 한자로는 ‘완성, 최고봉, 영원’ 등의 뜻이 담긴 完九이니 그 이상이 없을 만큼 거룩하고 완벽하다. 이름처럼 각종 갈등을 잘 관리해 국정 개혁을 완성하고, 흔들림 없이 오래가는 제도를 구축하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지만 현실은 불법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는 의지가 부메랑이 되어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돼버렸다.
그는 총리 자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성 전 회장의 자살 이후 “나는 총리다”라는 말을 여러번 했다. 그는 그렇게 총리 자리에 대한 자긍심과, 그 자리를 맡은 것에 대한 자부심을 공격적으로 표출했다.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금품수수 혐의를 두지 마라는 으름장이나 다름없었다.
재상 자리를 맡은 사람은 출처, 진퇴가 분명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옛사람들은 어떤 자리를 맡았을 때 경단급심(綆短汲深), “우물이 깊은데 두레박이 짧다”고 말하곤 했다. ‘능력이 미치지 못해 걱정’이라는 자세로 노심초사하며 일해야 하는 게 총리 자리다. 그런데 그는 벼슬의 소중함은 알았지만 정작 공직의 막중함은 알지 못한 것 같다.
그는 “돈 받은 사실이 밝혀지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로 우리의 인식체계와 언어감각을 파손하는 잘못도 저질렀다. 그가 말한 게 정치적 목숨인지 사무라이 개념의 목숨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비장한 말투나 문맥으로 미루어 정치적 목숨만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바꿔 해석하면 목숨을 운운한 그의 말은 대국민 협박이었다.
그는 충청도 사람들의 명예도 짓밟았다. 사실 여부에 대해 불분명한 답변이 충청도 말투라는 말은 개그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기반이며 표밭이라고 생각해온 충청도 사람들에게는 큰 모욕이었다.
이미 그만두기로 한 사람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은 후임 총리가 그런 인물이 아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총평하면 이 총리는 열심히 잘못 살아온 사람이다. 열심히 잘못 살아온 사람을 다시 뽑으면 안 된다. 이 총리 사의 표명 후 정홍원 전 총리가 실시간 검색순위에서 급상승하고, 그가 “이러다 또 총리 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패러디가 번지고 있다. 거듭된 박 대통령의 ‘총리 구인 실패’ 때문일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육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 육사 출신, 법조계 인사, 당내(그것도 친박) 인사를 선호하는 행태를 지양하고 폭넓게 인물을 찾아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경력이나 추진력 따위가 아니라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감성, 사상과 문화를 존중하는 소양이며 총리 인사를 통해 이 나라에 정직하고 청신한 기풍을 불어넣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적자원이 그런 사람도 구하지 못할 만큼 빈한하다고 믿고 싶지 않다. 정치적 경력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인문학 총리’ ‘선비 총리’로 가야 한다.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총리는 사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아무나 해도 그만이다.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아무나 총리를 해서는 안 된다. 감성적 소통능력이 모자라는 박 대통령에게 없는 것, 모자라는 것을 갖춘 사람이라야 한다. 총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