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바람은 피지도, 피우지도 말라

입력 2015-03-1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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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88 복상사’(아흔아홉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복상사하자)란 건배사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객지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일을 치르다 죽으면 객사, 과부와 일을 벌이다 죽으면 과로사, 본처와 사랑을 나누다 죽으면 순직 등 별의별 복상사가 다 있다. 그런데 복상사는 뭔가 비정상적 성관계가 연상돼 ‘부끄러운 죽음’이란 생각이다. 미국에서는 이를 ‘sweet death’(달콤한 죽음), 영국에선 ‘saddle death’(말안장에서의 죽음)라 한다. 우리는 애정사(愛情死), 방사사(房事死), 쾌락사(快樂死), 극락사(極樂死) 등의 속어로 일컫는다. 모두 비꼬는 투의 말이다.

최근 성이 문란해지며 복상사가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연령층도 30~60대로 넓어졌으며 여성 비율 또한 꽤 높다. ‘불에 기름 붓기’ 식으로 지난달 26일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위헌으로 선고하면서 62년 만에 간통죄가 폐지됐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간통죄 폐지로 주목받은 곳은 주식시장이었다. 간통죄 폐지 발표 즉시 성인용품 업체를 비롯해 등산·캠핑용품, 여행사, 피임약 제조업체, 심지어 유전자감식업체 등이 수혜주로 떠오르는 이색 현상이 일어났다. 강남의 나이트클럽에서는 직원들끼리 축배를 들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쯤되면 가히 ‘불륜경제’라 할 만하다.

간통죄가 폐지되면 배우자가 아닌 이성과의 불륜행위가 자유로워질 것으로 예상한 결과인 듯싶다. 하지만 헌재 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됐어도 간통 시 이혼 등의 절차에 있어 민사 소송은 피할 수 없다. 단지 간통죄를 국가에서 형사법으로 다루는 것만 폐지됐음을 간통녀, 간통남은 알아야 한다.

간통죄 폐지와 관련해 많은 언론과 방송에서 ‘바람피다’란 표현을 써 혼란을 일으켰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배우자에게 만족하지 아니하고 몰래 다른 이성과 관계를 갖다’란 의미의 우리말은 ‘바람피우다’로 올라 있다. 즉, ‘바람피다’라는 말은 잘못된 표현이다. ‘바람피우다’는 한 단어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피다’는 동작이나 작용이 주어에만 미치는 자동사로 ‘피어’ ‘피니’ 등으로 활용된다. 꽃이 피었다, 형편이 피었다, 곰팡이가 피었다 등과 같이 목적어를 취하지 않는다. 반면 ‘피우다’는 타동사로 ‘피워’ ‘피우니’ 등으로 활용되며 목적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장작불을 피우다, 담배를 피우다, 웃음꽃을 피우다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또 (일부 명사와 함께 쓰여) 그 명사가 뜻하는 행동이나 태도를 나타낸다. 재롱을 피우다, 소란을 피우다, 고집을 피우다, 어리광을 피우다 등으로 쓴다. ‘바람을 피우다’는 여기에 해당하는 용례다. 아직도 헷갈린다면 이것만 기억하자.‘피다’는 목적어를 취할 수 없는 자동사이며 ‘-우-’와 결합해 목적어를 취하는 타동사 ‘피우다’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제 쉽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죽음을 넘어선 애절한 러브스토리로 부부생활에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먼저 가서 좋은 데 자리 잡고 데리러 와요. 그러면 손을 잡고 같이 갑시다.” 세상을 뜬 할아버지의 옷을 아궁이에 태우며 할머니가 이별을 고하는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노부부에겐 죽음조차도 사랑으로 승화됐다. 그래서 더욱 눈물겹다. 그야말로 ‘막장극’인 요즘 세상에 변치 않는 노부부의 정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오늘 남편, 아내에게 사랑을 표하자.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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