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잠이 지나간다. 오늘도 출근은 6시 반
석간 기자의 하루는 첫차와 함께 시작된다. 놓치면 지각이다. 아침 6시 반까지 여의도 언저리 출입처로 출근하기 위해 일산, 노원, 안양 등에 사는 동기들은 첫차를 탄다. 4시쯤 일어나 도착해도 한참 동안 새벽달이 떠있다. 걷는 거리마다 사람이 없어서인지 바람이 쓰나미 파도처럼 덮친다. 묘한 서러움이 몰려온다. ‘이 새벽부터 나, 뭐하는 거니?’
석간은 그만큼 일찍 퇴근하지 않냐고?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일이 안 끝나면 집에 못가는 건 어느 직장인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술이 문제다. 기자는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만남이 많다. 꼭 술을 마셔야 기사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술이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남들은 12시까지 마셔도 다음날 9시 출근이 크게 힘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석간 기자, 우린 아니다. 술자리가 12시를 넘어가면 귀가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 어차피 한두 시간 앉아서 졸다가 나온다.
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출근해도 술이 안 깨 고역이다. 그 상태로 아침에 기사를 마감하는 선배를 보면 후광이 비친다. 분명 똑같이, 아니 더 마셨는데 눈빛에서 취기를 찾아볼 수 없다. 허나 신입에게 그런 ‘고수의 필살기’는 없다.
우리 위 기수에서는 어느 신참 기자가 출입처 카펫에 토사물을 분출해 선배가 카페트를 다 들어내고 치웠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런 술자리가 한주에 적어도 2번, 많으면 5일 내내 있다. 입사 후 동기 모두 5kg 이상 쪘다. 물론 배만.
◇“자니…?” 새벽에 전화해도 놀라지 마세요
석간지에서 기사 1차 마감은 오전 9시 언저리다. 그러나 취재가 끝난 기사의 경우 대개 8시 전후로 마감해야 한다. 문제는 아침에 와서 보니 기사에 부족한 부분이 있을 때다. 취재원에게 7시부터 전화를 거는 민망한 일이 생긴다. 그가 잠결에라도 받으면 다행이지만 안 받으면 그야말로 ‘똥 줄’이 탄다. 인맥이 부족한 수습기자의 경우 좌불안석일 수 밖에 없다.
지난해 11월 동기들과 ‘길거리 민생경제’ 프로젝트 취재를 할 때였다.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고 서울역 인근 카페에 모여 나름 꼼꼼히 기사를 마무리 했다. 그러나 마감 날 아침, 기사에 인용한 통계의 공신력이 부족하다는 데스크의 지적이 날아왔다. 새벽부터 다들 학과 교수님에게 전화해 민폐를 끼쳤다. 배도 나오고 얼굴도 두꺼워지는 중이다.
◇전문가 포진한 이 바닥. 열정만으론 안돼
“모 기업이 유상증자를 준비 중이래→무슨 말이지? 좋은 건가? 어떤 영향이 있는 거야?”
소위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경제면을 꼼꼼히 챙겨봤을지라도 기업 간 지배구조나 금융계 현황, 증권 용어 등을 훤히 꿰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 수습들 역시 마찬가지다. 현상의 디테일에서 부터 경제 전반을 보는 시각까지 하나하나 배워가는 중이다.
기본도 모른다는 무시를 면하기 위해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밝히는 것이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라고 취재원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간다. 기자는 목이 뻣뻣해지기 쉬운 직업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선배는 상대방에 대한 겸손과 냉혹한 자기 평가가 너를 더 크게 할 거라고 말했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그래도 정말 기본도 모르고 질문하면 안된다. 공부할 수 있는 데까지 알아보고 나서 얘기다. 그래서 오늘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로 쏟아지는 기업 정보를 확인하고 책, 사전, 해외 신문 등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다. 정보원인 사람 만나기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래서 또 취한다.
술이 덜 깬 채로 새벽바람을 파도처럼 맞으며 출근하다가 문득 서러움이 몰려와도 3초 만에 잊는다. “그래도 기자가 됐잖아. 오 마이 헛개… 아니, 드림스 컴 트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