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과거 서울에서 터를 잡을 때 고(故) 이상순 일산실업 명예회장(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인)과 긴밀한 논의를 나눈 것은 재계 원로들이 아는 일화다. 고 이상순 명예회장은 당시 강남의 부동산과 사채시장의 큰 손으로 불렸으며 풍수지리에 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재계에서는 서울 강남에 본사를 두고 있는 현대차그룹과 동부그룹의 일부 계열사가 터를 옮기는 것이 화제다.
현대차그룹의 4개 계열사(현대위아ㆍ글로비스ㆍ파워텍ㆍ특수강)는 다음달 설 전후에 현대차의 새 사옥이 들어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로 이전한다. 이 계열사들은 한전 본사가 나주로 이전하면서 주변 상권 보호를 위해 신사옥이 지어지기 전에 입주한다.
현대그룹은 1983년 서울 종로구 계동사옥을 지으면서 서울 시대를 열었다. 이후 현대그룹이 계열 분리되면서 현대차그룹은 2001년 12월 말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13년여 만에 강남구 삼성동 시대를 열게 됐다.
동부그룹도 1983년 서울 중구 초동사옥에 그룹의 본사를 꾸렸다. 이후 강남대로 뱅뱅사거리 사옥(현 푸르덴셜생명 빌딩)으로 이전했다가 2002년 강남구 대치동의 동부금융센터가 완공되면서 본사를 옮겼다.
그러나 동부금융센터의 4층과 16~18층은 다음달 설 즈음에 공실로 남게된다. 16~18층을 써온 동부제철은 산업은행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STX남산타워로 이전한다. 이 곳은 산은이 관리하고 있다. 동부금융센터 4층을 사용한 동부특수강은 현대제철에 인수되면서 삼성동으로 이전한다.
두 그룹 모두 32년 전 서울에, 13년 전 강남에 본사를 꾸렸지만 희비는 엇갈린 셈이다.
일각에서는 재계의 본사 이전을 풍수지리와 연관 짓는 시각도 있다. 많은 수의 국내 주요 기업들이 사옥을 이전할 때 풍수를 본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일부 기업들은 건물의 방향과 모양은 물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산과 길, 강의 흐르는 방향까지 계산해 CEO의 방 위치와 층수, 책상의 방향을 배치하기도 한다.
전항수 한국풍수지리연구원 원장은 “현대차그룹의 양재동 사옥은 남서향으로 돼 있어 터가 상당히 좋다”며 “동부그룹의 대치동 사옥은 언덕 밑에 있어 안정적인 지세이긴 하지만 건물의 비스듬한 디자인과 철과 유리를 부각시킨 것인 안좋은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를 내놨다. 전 원장은 “현대차그룹의 신사옥은 탄천을 앞으로 볼 수 있게 본 건물을 동향으로 배치해야 지리적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