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자동차 판매가 늘고 있지만, 급속충전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지원 예산도 감축되면서 전기차 지원사업이 후진하고 있다.
26일 환경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설치된 699개의 전기충전인프라는 모두 완속충전시설로, 급속충전시설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속충전이 보통 5~7시간 걸리는 반면, 급속충전은 약 30분이면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다. 업계는 현실적인 자동차 사용 환경을 볼 때, 급속충전시설의 확대가 전기차 보급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급속충전시설을 비롯한 충전인프라 구축은 열악한 상황이다. 지난 4년간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2670개 가운데 급속충전시설은 177개에 불과하다. 이미 설치된 충전기마저도 차종마다 전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 호환이 불가능하고, 대부분 공공기관에 설치돼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또 야간이나 공휴일에는 출입이 제한되는 곳도 많아 충전시설 이용에 제약이 따른다.
충전인프라 확대가 주춤하는 사이 전기차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누적 전기차 대수는 2534대에 이르고 올해 상반기에만 663대가 보급됐다. 특히 올 하반기 전기차 255대를 민간에 보급하기로 한 제주도에서는 도민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은 결과 2350명이 접수하면서 평균 10.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자동차 회사들도 기술이 발전된 전기차를 앞다퉈 선보이며 전기차 보급 확대에 일조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아차 ‘쏘울EV’, 르노삼성 ‘SM3 Z.E’, BMW ‘i3’, 기아차 ‘레이’, 한국지엠 ‘스파크’ 등의 전기차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소비자 선택폭이 넓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들이 미래 시장을 선점하고 신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배터리를 강화하는 등 전기차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정부의 정책이나 인프라시설이 따라오지 못하며 시장 형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예산이다. 올해 설치 예정인 충전기는 대당 7000만원인 복합멀티형으로 기존 충전시설보다 고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관련 예산은 지난해 276억원에서 올해 254억원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예산이 부족하다보니 전기차 판매 성장에 비해 충전인프라시설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수준이다. 당장 내년에 전기차 충전인프라시설을 위해 올해 예산의 3배에 이르는 900억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미지수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해 710~720개의 충전시설을 설치할 예정이지만, 급속충전시설은 예산 문제로 올 상반기 하나도 설치하지 못했다”며 “하반기 중 급속충전기 55개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