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화의 흐름은 농업 분야도 피해갈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칠레를 시작으로 잇따라 미국ㆍ유럽연합(EU)ㆍ호주ㆍ캐나다 등과 같은 농업 선진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며 시장 개방을 추진해왔다. 특히 현재 협상 중인 중국과의 FTA가 성사되면 곡물ㆍ채소ㆍ과일류 등을 포함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농산물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본격적인 농산물 개방화 시대를 맞아 농식품 수출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지만 국내 수출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지난해 기준, 농식품 수출은 연간 80억달러 선으로 전체 수출 약 5500억달러의 1% 남짓에 불과한 수준이다. 각 국가별 검역과 위생기준, 통관규정 등의 비관세장벽과, 높은 물류비용, 수출시장개척을 위한 질 높은 정보 부족, 환율변동위험, 수출 전문인력 부족 등 수출과정에서의 애로사항도 적잖다. 농가 소득과 직결되는 신선 농수산물 수출비중은 35%에 불과한 반면 대기업이 수입원료를 사용하는 가공식품의 비중이 65%에 이를 정도로 높아 국내 농업과의 연계성도 부족하다.
김완배 서울대 농경제학부 교수, 박기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서현 농협중앙회 수출팀장으로부터 우리나라 농식품 수출 수출체계의 문제점과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수출 활성화…농산물 가격 안정, 농가소득 증진 지름길 = 김완배 교수는 농식품 수출이 농업경영의 주요한 전략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 대해 “값싼 수입 농산물이 들어오다보니 국내 생산 농산물이 내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FTA 등으로 인한 농가소득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선 해외의 고가·고품질을 겨냥한 시장 등 새로운 시장을 찾는 것이 더 중요졌다는 얘기다.
박기환 연구위원은 농식품 수출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전 기대효과부터 언급했다. 농산물을 수입 물량 공급이 조금만 늘더라도 가격 변동 폭이 심한데, 수출은 이러한 가격 등락의 완충 역할을 해 농가소득 지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연구소 자체 분석 결과 과일이나 채소의 수출이 중단될 경우 이들 품목의 국내가격이 6% 하락해 농가소득은 약 10%나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서현 팀장은 “시장개방이 대세”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했다. 서 팀장은 “기술발달 등의 영향으로 최근 양파, 오이, 배추, 토마토 등이 과잉 생산돼 가격의 변동 폭이 굉장히 커졌다”면서 “수출을 활성화하면 공급 과다 품목의 가격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농산물 수출 농가나 업체 규모가 영세하다보니 환율과 국내외 가격차로 내수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수출 활성화의 걸림돌로 지목됐다. 김 교수는 “국내 농산물 수출 주체들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려면 규모화된 수출업체 육성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면서 미국의 감귤 시장을 공략한 스페인 농가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스페인 농가도 우리처럼 영세한 곳이 많았지만 수출 창구를 일원화하고 브랜드를 하나로 통합해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스페인 감귤농가의 경우 수출농가들이 미국의 대규모 수입업체에 위탁거래방식으로 일괄적으로 마케팅과 홍보를 맡겨 미국 감귤시장의 60%를 점유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충분한 판촉 능력을 갖추지 못한 농가나 업체들이 개별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다보니 ‘한국산 브랜드’로서의 이미지 정착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 팀장은 수출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수출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내수 가격과 수출 가격’의 편차 해소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예컨대 파프리카의 경우 1~2월에는 kg당 8400원까지 오르고, 7월에는 k당 1000원까지 떨어지는 데, 수출단가는 바이어와 계약시 고정하기 마련이다. 이에 그는 “같은 작목을 재배하는 농가들이 모여 자율조직화해 자조금을 마련, 국내 가격이 상승할 때는 이익을 적립하고 하락할 때는 손실해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박 연구위원도 “농가 입장에서는 수익을 따라가다보니 농산물 가격이 높은 때 계약을 파기하게 돼 해외 거래업체에게 신뢰도를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존 원예단지 등을 생산물량을 모두 수출하는 ‘수출전용단지’로 전환한다던지, 손해분을 보전해주는 수입보장보험 제도를 도입해 안정적인 가격으로 농산물을 공급하고 수출 물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농식품 수출에 있어 대표적인 어려움 중 하나가 환율 하락, 유가와 자재비 인상으로 인해 수출물류비 상승이다. 서 팀장은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항공 물류가 선호되지만 농식품의 경우 비용이 비싸고 품목도 제한돼 있다”면서 “정부에서 일부 신규 시장 개척하는 경우 국내 항공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6개월 정도 물류비를 추가 지원하고는 있지만 체감하기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박 연구위원은 “주요 수출국에 공동 물류기지를 만들어 수출업체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물류비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수출 국가 늘리고 품목 다양화해야…조직화ㆍ규모화도 필수 = 수출 국가 및 품목 다변화는 농산물 수출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기 위한 선결 과제로 꼽힌다. 서 팀장은 “일본에 대한 파프리카, 김치, 꽃 등 주요 수출품목의 의존도가 높다보니 엔저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농가소득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면서 “당장은 현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과 경쟁하기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틈새시장부터 차근차근 공략해나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서 파프리카가 생산되지 않은 기간에 파프리카를 수출하는 것도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 선호되는 신고배 품종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수출 품목을 선정할 때는 현지인의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맛과 형태, 색깔, 포장 디자인 등 수출 대상국 소비자들의 문화 DNA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본격적인 농수산물 개방화 시대를 맞아 수출농가의 조직화·규모화의 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동시다발적인 통상협정에 대응해 농산물 품목별 산지 생산자들이 뭉친‘산지조직체’가 나서서 시장교섭력을 확보한다면 국내 농업에 대한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김 교수는 “영세한 국내 농가들이 수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품질의 고급화, 균일화가 관건인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경쟁력 있는 산지조직체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단일조직으로 수출에 나서야 교섭력도 높아지고, 국내 업체까리 경쟁해서 단가가 하락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면서 “개별 농가보다는 수출 업체를 먼저 조직화하는 방안이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수출 전용 단지를 지정해 생산물량을 전량 수출하도록 하면 자연스럽게 농가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묶여 정보교환이 활발히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 전민정ㆍ박상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