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섬유로 불리는 아라미드는 블루오션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신 섬유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섭씨 500도에도 연소되지 않는 강한 소재여서 항공·우주 분야, 방탄복, 고성능타이어 등 다양한 산업분야와 품목에 적용 가능하다. 듀폰과의 소송전도 바로 이 같은 신 시장의 장악력을 확보하기 위한 치열한 쟁탈전이었던 셈이다.
2005년 코오롱이 뛰어들기 전까지 듀폰과 일본의 데이진이 시장을 양분해 왔다. 현재는 듀폰이 ‘케블라’라는 브랜드로, 데이진은 ‘트와론’으로, 코오롱은 ‘헤라크론’이란 이름으로 제품화하고 있다.
코오롱과 듀폰의 소송전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듀폰은 2009년 2월 코오롱이 자사의 전직 직원을 채용해 아라미드 기술을 빼돌렸다며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미국 법원은 11월 9억1990만 달러(약 1조44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코오롱 측은 “잘못된 이론과 논리에 근거한 손해배상액 산정”이라며 “이 배상액은 설사 듀폰이 입을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가정하더라도 터무니없이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사건을 담당한 로버트 페인 판사는 별건으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서 듀폰의 손을 들어줬다. “코오롱이 듀폰의 기술을 빼돌렸다”는 배심원의 판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3년 뒤 항소법원은 듀폰의 영업비밀임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고 1심에서 코오롱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들이 재판과정에서 배제됐다며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양사의 소송전이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코오롱은 함소심에서 △듀폰의 영업비밀임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 △1심에서 코오롱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들이 배제된 점 △잘못된 이론에 근거한 손해배상액 산정 등을 집중적으로 내세웠다.
특히 이번 판결에서 항소법원은 앞으로 진행될 파기환송심에서 1심 재판을 맡았던 판사를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1심 재판을 맡았던 로버트 페인 판사는 코오롱에 대한 1조원 상당의 배상금과 아라미드 브랜드 헤라크론 20년간 판매금지 판결을 내리면서 공정성 논란이 있었다.
페인 판사는 판사 임용 전 20여년간 맥과이어 우즈라는 로펌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맥과이어 우즈는 듀폰을 위해 일해 온 로펌 중 하나다. 이를 감안, 코오롱 측 변호인단은 재판 이전 판사기피 신청을 했지만 페인 판사 본인에 의해 거부당했다.
회사 측은 “이번 결과는 코오롱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가 배제된 채 듀폰 측에 유리하게 내려졌던 1심 판결을 완전히 무효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재심에서 1심 재판에서 배제된 증거들을 제출할 수 있게 돼 보다 공정한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지난 2011년 코오롱과 듀폰이 영업비밀 침해로 맞고소한 바 있다. 코오롱인더스트리와 듀폰은 상대회사가 기밀을 빼가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2010년 8월, 2011년 3월 각각 진정서와 고소장을 제출했다.
코오롱은 2006년 4월부터 2009년 4월까지 듀폰코리아 직원들이 미국 본사 지시에 따라 코오롱의 첨단 아라미드 섬유인 ‘헤라크론’의 영업비밀을 취득했다고 주장했다. 듀폰은 코오롱이 자사 브랜드 ‘케블라’에 관한 핵심 기밀을 의도적으로 도용했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코오롱은 30년간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투자,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2012년 3월 이 사건에 대해 각각 내사종결 및 참고인중지 처분을 결정했다. 코오롱이 제기한 진정사건은 듀폰이 코오롱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였다고 볼만한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것. 또 듀폰이 코오롱을 고발한 사건은 전직 듀폰 직원이었던 컨설턴트들이 현재 외국에 체류하고 있다며 참고인중지를 처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