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김연아의 은메달, 왜 신아람이 생각날까 [최두선의 나비효과]

입력 2014-02-2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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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김연아 선수(사진 = 연합뉴스)

‘여왕’의 날갯짓이 끝났다. ‘피겨여왕’의 마지막 올림픽은 경이로움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왔고, 진한 여운을 남겼다.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장은 물론 제대로 된 훈련장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서 언제 또 제2의 김연아를 볼 수 있을까 잔잔한 아쉬움이 마음속에 가득하다.

피겨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주고 떠난 김연아에게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를 보내도 모자랄 이 때,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 판정 논란이 찬물을 끼얹는다.

금메달을 딴 러시아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는 눈에 띄는 점프 실수를 제외하고 매번 1.0 이상의 가산점을 받았다. 6개 부문에서 1.0 이하의 가산점을 받은 김연아보다 월등히 높은 점수다. 소트니코바는 구성점수에서도 33개 부문에서 3점을 받았고, 트리플 살코, 더블악셀 모두에서 김연아에 앞섰다. 김연아는 자신의 특기인 스텝 시퀀스에서도 기본점수, 가산점에서 소트니코바에 뒤졌다.

소트니코바의 완승이다. 그런데 국내 여론과 외신들은 일제히 판정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올림픽 2연패의 독일 피겨 전설 카타리나 비트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결과에 대해 토론 없이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고, 미국 피겨 퀸 미셸 콴은 “믿을 수 없어”라는 글을 남겼다. 피겨 전문 기자 필립 허쉬는 “소트니코바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의 사라 휴즈 이후 가장 의외의 금메달리스트”라고 말했다. 러시아를 제외하고 전 세계가 김연아의 은메달에 불복했다.

소트니코바의 프리스케이팅 점수는 지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기록한 김연아의 역대 최고점 150.06에 근접했다. 하마터면 세계신기록마저 경신할 뻔 했던 그녀의 연기가 과연 그렇게 아름다웠나. 익명의 심판진에서 나온 ‘김연아 0점’의 기록은 의혹을 넘어 황당함마저 안겨준다. 이번 판정 논란을 단순히 애국심에 기댄 억지주장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모든 심사는 공정하고 엄격하게(strictly and fairly) 진행됐다”는 국제빙상연맹(ISU)의 공식입장은 예상대로였다.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신아람 선수(사진 = 뉴시스)

여기서 우리는 2년 전 런던 올림픽을 떠올리게 된다. 세계랭킹 12위였던 신아람 선수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기적을 썼다. 그녀는 상위 랭커 모니카 소잔스카(독일), 안카 마로이우(루마니아)를 보란 듯이 격파하며 4강에 올라갔다. 4년의 땀과 노력으로 메달을 눈앞에 둔 상황, 그녀는 전년도 올림픽 챔피언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을 만나 ‘멈춰버린 1초’에 울었다.

‘5초, 4초, 3초, 2초...’ 전광판 시계가 1초에서 멈췄다. 1초의 시간 동안 패배 직전에 몰린 하이데만은 신아람을 수차례 공격했다. 심지어 전광판이 ‘0’을 표시했지만 오스트리아 심판은 ‘One second one second(원 세컨 원 세컨)’을 외치며 시간을 1초로 되돌려 경기를 속행했다. 경기 후 거센 항의와 국민적 반발, 국제피겨연맹(FIE)의 특별상 수상 제안 등 후폭풍은 거셌지만 신아람의 올림픽은 그렇게 끝이 났다.

김연아가 마지막 은퇴대회에서 금메달을 못 받은 것이 아쉬운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땀과 노력으로 평가되어야 할 올림픽이 어느 순간 퇴색했다는 작금의 사태가 안타까운 것이다.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은 올림픽에 인생의 꿈을 담고, 노력한다. 메달의 색깔보다 중요한 것이 그들의 참가와 공정한 경쟁에 있다. 그래서 올림픽은 경쟁을 넘어서 화합과 축제의 장으로 인식된다.

러시아가 자국 올림픽에서 피겨계를 정복하기 위해 어떤 비열한 담합을 시도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올림픽에서 선수들의 땀과 열정에 위배되는 불공정한 행위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명확하다.

피에르 쿠베르탱은 근대 올림픽을 창시하며 “인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 점이 올림픽이 지금까지 최고 권위의 대회로 남아있는 이유이다.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이 같은 논란이 거듭될수록 올림픽의 권위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올림픽에 도전하는 순수한 꿈과 열정도 사라질 것이다.

‘Hot, Cool, Yours(뜨겁게, 차갑게, 당신의 것)’를 모토로 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김연아의 갈라쇼를 보면서 누구보다 뜨겁고, 차갑게 달려온 김연아가 자신의 것을 얻지 못한 사실에 다시 한 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오른발에 1.5cm의 금이 간 상태로 최상의 연기를 펼친 김연아의 모습이 도리어 편파 판정으로 얼룩진 올림픽에 실낱같은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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