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수, 왜 빅토르 안이 됐나 [배국남의 직격탄]

입력 2014-02-13 06:36 수정 2014-02-1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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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그의 몸에 태극기는 없었다. 대신 생경한 러시아 국기를 두르고 경기장을 돌고 있었다. 빅토르 안을 연호하는 러시아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TV 화면을 통해 이 모습을 지켜 본 시청자들은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10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에서 펼쳐진 남자 1500m 쇼트트랙 결승에서 2분15초062 기록으로 동메달을 목에 건 안현수다. 2006년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태극기를 흔들며 경기장을 돌았던 안현수가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에선 러시아 국가대표, 빅토르 안으로 나서 러시아 국기를 두르고 동메달 세레모니를 한 것이다.

안현수는 왜 빅토르 안이 됐을까. 동메달을 목에 건 빅토르 안, 아니 안현수는 스포츠계 파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 만연된 연고주의와 패거리 문화의 슬픈 자화상이다.

“(한국)남자팀 코치와 선수들이 짜고 (안)현수를 방해했다.” 지난 2006년 세계선수권 대회 직후 충격적 폭로가 이어졌다. 밴쿠버 올림픽 출전권이 걸렸던 2009년 대표선발전에서 7위에 그쳐 3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뒤에는 일부 선수와 코치가 모여 담합(짬짜미)을 해 안현수를 밀어냈다는 의혹도 제기돼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추악한 파벌 싸움이 원인이 돼 안현수는 2011년 러시아 귀화행을 택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빙상계의 파벌문제가 세계적인 선수 안현수를 러시아로 추방시킨 것이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스포츠계에 만연한 파벌의 폐해를 역설적으로 드러냈다. 학연 등으로 무장한 파벌에 얽매여 실력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지 못했다면 4강 신화는 불가능했다. 외국인 거스 히딩크 감독이 축구계 파벌을 철저히 배제한 채 철저히 실력만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했기에 4강 신화가 가능했다는 전문가들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주의에 찌든 스포츠계의 파벌의 병폐가 한국 스포츠와 선수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체육계 뿐만 이겠는가. ‘학파는 없고 파벌만 있다’는 학계, 파벌의 이익 추구로 국민과 국가의 이익은 내 팽개친 정계, 특정 지역과 학교 출신의 파벌이 요직을 독점하고 있는 관계, 창작성과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단체장의 파벌에 속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예술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파벌공화국이다. 학연, 지연, 혈연, 종교 등 각종 연고주의로 물든 패거리 즉 파벌 문화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준만 전북대교수가 ‘미디어 문화와 사회’에서 “한국 사회의 실세는 연고단체이지 시민단체가 아니다”라고 단언 했듯 파벌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이우관 한성대 교수가 ‘동아시아 3국의 연고주의 비교’라는 논문을 통해 10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의 지연(地緣)강도가 8.21으로 매우 높은데 비해 중국은 5.72, 일본은 7.36으로 낮았고 한국의 학연(學緣) 강도가 8.53인데 비해 중국은 6.36, 일본은 7.92에 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연고주의로 물든 파벌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강력한 연고로 무장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와 이익만을 무한증식하기위해 견고한 패거리로 뭉치고 파벌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파벌은 공정한 경쟁을 무력화시키며 불법, 편법과 비리를 낳는다. 그리고 실력과 능력을 가진 인재를 배제시키며 무능한 인사를 활개 치게 만든다. 무엇보다 각종 파벌은 불공정의 일상화와 연고지상주의를 조장하는 폐해를 확대재생산한다.

이 때문에 파벌 앞에 실력과 능력 있는 인재는 설자리를 잃고 공정한 경쟁과 시스템은 실종돼 조직은 약화되고 사회는 경쟁력을 상실하며 국가는 퇴행한다.

안현수가 왜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돼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도 바로 파벌 문제에 있었던 것이다.

“어른들의 파벌싸움으로 어린 선수들을 희생시키고 순수해야할 체육을 자신들의 이권 다툼의 싸움판으로 만들어 버린 당사자들은 그에 따른 책임 있는 행동을 보여야 할 것이다.”문화연대가 안현수 사태 직후인 2006년 1월 30일 발표한 성명이다. 이후로 스포츠계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파벌 문제는 얼마나 해결됐을까. 대답은 회의적이다. 계속 우리는 또 제2의 빅토르 안을 목도해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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