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년 동안 ‘금융황제’로 불리며 세계적 성공신화를 만든 로스차일드가 5형제들의 부침을 추적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여행’이다. 여행을 즐기거나 자녀들에게 여행을 장려한 형제는 흥했고 여행에 나서지 않는 형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로스차일드 형제들은 다음 세대를 담당할 ‘젊은 로스차일드’들을 훈련시키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뤄졌는데 그중의 하나가 여행이었다고 한다.
자녀들은 여행이 주는 흥분, 부모 눈길에서 벗어나는 해방감, 낯선 장소,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일도 배우고, 외국어에도 능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국제인’이 되어 다양한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었다. 그들의 형제가 있는 파리, 나폴리, 비엔나, 런던 어디나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를 갖기에 충분했다. 특히 영국에 진출한 네이선의 아이들 모두에게 여행은 큰 부분을 차지했다. 네이선의 아이들은 괴팅겐과 스트라스부르에서 공부하고 가정교사와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했다.
그러나 본가인 프랑크푸르트만은 예외였다. 엄격하고 신앙심(유대교) 깊은 장남 암셸과 자식이 없는 부인은 결코 프랑크푸르트를 떠나지 않았다. 여행을 싫어했던 암셸은 프랑크푸르트의 유대 공동체 안에서만 몸과 마음이 편안했다. 여행을 떠나면 종교의식과 정해진 식사를 엄격하게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자신의 야심을 늘 자제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다른 네 형제의 자녀들도 프랑크푸르트 여행을 꺼렸다. 아이가 없던 장남 암셸은 자기에게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며 기부에 나서는 등 ‘하늘을 설득하는’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었던 로스차일드 본가는 ‘아들’만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은 좀 공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 금융황제로 불리는 로스차일드가의 산실이던 프랑크푸르트 은행은 20세기 초 문을 닫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여행을 싫어한 장남과 차남, 사남 일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여행을 즐긴 런던의 삼남 일가와 파리의 막내 일가가 로스차일드 그룹을 계승해오고 있다. 로스차일드 형제들의 부침을 보면 ‘낯선 곳으로의 여행’에 성공의 DNA가 숨어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따라서 사업가라면 자녀들에게 필수적으로 여행을 장려해야 할 것 같다.
“로스차일드 남작에게는 두 가족이 있었다. 자신의 가족(아들)과 예술이다. 만약 그가 첫 번째에서 완전한 만족을 찾지 못했다면 두 번째에서 위안을 찾을 것이다.” 위안이 되는 게 가족인가, 예술인가, 아니면 돈인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 번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그에 따라 새해의 계획과 우선순위가 매겨지지 않을까. 그리고 사업가가 아니더라도 자녀에게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장려하자. 여행의 산경험만큼 소중한 인생의 보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