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그룹을 필두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고강도 구조조정에 본격 돌입했다. 계속되는 유동성 압박에 자금줄이 막히자 핵심 자산 매각이라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동부, 한진해운, 현대상선, 금호아시아나, 두산 등이 자금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강도 높은 자구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동부다. 김준기 회장은 1994년 야심차게 시작한 반도체 사업을 20년 만에 포기하는 초강수를 뒀다.
동부는 비메모리 반도체, 합금철을 각각 생산하는 동부하이텍과 동부메탈을 매각한다. 두 회사가 보유한 자회사도 함께 처분한다. 동부하이텍은 매각에 앞서 더 높은 기업 가치 평가를 받기 위해 동부메탈 지분을 처분, 차입금을 축소한다. 동부메탈은 동부하이텍(31.28%), 동부인베스트먼트(31%), 동부스탁인베스트먼트(8.5%)가 보유한 총 70.78%의 지분과 경영권을 모두 내놓았다.
동부는 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당진항만, 동부건설 당진화력발전소(착공 예정), 동부익스프레스, 동부팜한농 소유 유휴부지 등 계열사들의 자산을 매각해 2015년까지 총 3조원을 확보할 방침이다. 여기에는 김 회장의 사재(1000억원 규모) 출연도 포함된다.
동부제철의 경우 자산 및 계열사 지분 매각 외에도 유상증자 등을 통해 현재 2조3500억원 규모의 차입금과 269%인 부채비율을 2015년 9000억원과 140% 이하로 각각 낮출 계획이다. 이미 서울 동자동 오피스빌딩을 매각해 약 17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한 동부건설은 동부익스프레스 지분과 각종 자산을 추가로 내다 팔 계획이다.
동부는 이 같은 구조조정 자구계획을 통해 현재 6조3000억원인 차입금을 2015년까지 2조9000억원대로 절반 이상 줄인다. 부채비율도 현재 270%에서 170%로 낮춰 채권단과의 재무구조개선약정에서 벗어난다는 방침이다. 동부는 2003년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맺은 바 있다.
업황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해운업계의 대표 기업인 한진해운, 현대상선도 주요 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건전성 확보에 나선다.
부실 책임을 물어 최근 김영민 대표를 경질한 한진해운은 대한항공에 1500억원을 빌려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근본적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구채(신종자본증권) 발행이 관건이다. 한진해운은 이에 따라 비주력 전용선 일부 매각 등 최대 6900억원 규모의 자구 계획을 마련하고 은행권과 접촉 중이다. 한진해운은 이와 별개로 국내외 터미널들의 일부 지분 매각을 추진한다.
현대상선도 부산신항만 터미널, 컨테이너, 선박 일부 매각, 영구채 발행 등을 통해 약 57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현재 800%를 넘어섰다.
자구 계획을 이미 상당 부분 실행에 옮긴 금호아시아나와 두산은 추가 재무구조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2010년부터 워크아웃 중인 금호아시아나는 대우건설, 대한통운, 금호생명 등 계열사와 자산을 매각하는 등 경영정상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아시아나항공이 790억원 규모의 금호산업 기업어음(CP)을 출자전환해 422만주(13.08%)를 취득하기도 했다.
두산의 경우 두산인프라코어와 밥캣에 추가로 필요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4억 달러 규모의 해외 주식예탁 증서(GDR)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웅진, STX, 동양 등 대기업들이 해체 수준을 밟으며 유동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게 사실”이라며 “동양 사태를 계기로 위험 징후가 있는 기업들에 대한 금융당국 및 채권은행들의 구조조정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만큼 자구 노력에 힘쓰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