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산업이 대내외적 불확실성으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비롯해 전 금융권이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는 등 금융산업은 내부적인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 외부상황도 여의치 않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중국경제 성장 둔화로 국내 금융시장은 언제든 급격한 자금유출이 일어날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이다. 이에 이투데이는 금융경제연구소 소장들로부터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현주소와 향후 전망, 정부 역할 등에 대한 의견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책적 지원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한편 정부의 거시적 외환정책을 통한 우리경제 전반의 경쟁력 향상을 주문했다. 아울러 해외 진출과 자체 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한 금융회사의 성장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우리 정부와 현지 금융당국과의 협력을 당부했다.
▲ 금융정책= 정책적 지원규제 완화… 서민中企 자생력 강화
금융경제연구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국내 금융산업 선진화 방안은 정책적 지원과 규제 완화다. 이를 통해 개별 금융회사의 발전을 이끌고, 금융산업을 실물경제 지원을 넘어선 독자적 산업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배현기 하나금융연구소장은 “회수시장과 인수합병(M&A)시장 제도 정비 등 모험 자본 활성화를 위한 시장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며“장기저축 유인제도, 세제 혜택 등 민간 부문의 은퇴자산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적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근 계속되고 있는 은행권 수익성 악화는 정부의 지나친 규제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김유태 농협경제연구소장은 “지나친 금융규제는 시장을 통한 자율조정 기능과 금융기관의 혁신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만 금융회사도 비이자 부문 경쟁력 강화나 규제리스크 관리역량 강화 등 수익성 악화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의 서민중기 지원책은 대출신용보증 공급 규모 확대 등 직접적 지원 방안에 지나치게 집중됐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금융회사가 지원을 지속할 수 있고 서민중기의 자생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 분석실장은 “금융권이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수준의 서민중기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고 임병철 신한FSB연구소장은 “앞으로 서민 일자리 창출, 저신용자 신용정보 관련 인프라 확충을 통한 금융 접근성 제고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질타를 받았던 금융회사 지배구조와 성과보상체계는 제도적 해결보다 운영관행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장은 “성과보상체계는 감독당국의 직접적 규제보다 개별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며 “다만 금융회사가 장기적 안목으로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도록 성과평가지표(KPI) 제도와 성과보상체계의 객관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 통화정책=내년 하반기 금리인상 전망… 가계빚 부담 증가 고려해야
연구소장들은 당분간 기준금리(2.5%) 동결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경기가 뚜렷한 개선세를 나타내지 못하는 가운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 대외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인상은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배 소장은 “세계경제 회복 조짐을 비롯해 외환건전성 개선, 경상수지 흑자 등 국내의 양호한 외환수급을 감안할 때 원달러 환율의 하향안정 기조는 유효하다”며 “다만 미국 국가채무위기 가능성, 신흥경제 성장둔화 우려 등이 상존한 상황에서 환율은 중간중간 조정을 거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임희정 실장은 금리 변동은 양면성을 가지기 때문에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금리인상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임과 동시에 가계빚 상환 부담 증가 등 국내 소비부진 및 경기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외환정책= 장기 경쟁력 향상에 초점… 거시건전성 3종세트 필요
연구소장들은 외환정책이 환율관리가 아닌 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초점을 둔 장기적 관점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선물환 포지션 제도, 외환건전성 부담금,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등 거시건전성 3종 세트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배 소장은 “외환정책은 지금보다 장기적이면서 기존시장 진출 확대 및 신시장 개척 등 산업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 금융시장이 대외적 여건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외환정책이 외환보유고 조정 등을 통한 환율관리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핵심적 외환정책이었던 외환보유고는 이용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외환보유고를 현 수준에서 확충 또는 축소하는 조치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임병철 소장은 통화스와프 등 국제공조 강화를,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 외환건전성 모니터링 강화를 주문했다.
특히 외환보유액은 기회비용 문제와 외환자금의 흐름을 왜곡해 대내외 경제적 불균형을 키울 수 있는 부작용을 불어오는 만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해외진출= 금융당국 간 협력 강화… 대형화보다 경쟁력 필요
연구소장들이 성공적 해외진출을 놓고 최우선으로 강조한 점은 금융당국간 협력 강화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산업실장은 “금융은 규제산업이므로 진출 대상국의 규제를 넘어서기 위한 금융당국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금융회사는 진출 대상국의 금융환경, 경쟁구조 등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핵심역량 확보를 위한 치밀한 사전 분석을 해야 한다”면서 금융회사의 노력을 주문했다.
이동주 IBK경제연구소장 역시 “해외진출은 문화, 영업환경, 금융규제 등의 차이를 고려할 때 금융당국의 거시적 계획이 필요하다”며 “금융회사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해외 지역전문가 제도 등 진출국에 대한 연구와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메가뱅크에 대해선 부정적인 견해가 주를 이뤘다. 금융회사의 글로벌 역량 강화는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보다 글로벌 수준의 핵심 역량을 보유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진단이다.
김홍달 소장은 “특정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대형화의 선결조건”이라고 밝혔고 배 소장은 “시장 자율적인 대형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직 갈 길이 먼 국내 투자은행(IB) 발전 방안으로는 자본력 확충과 리스크관리 역량 강화 등이 제시됐다. 임병철 소장은 “대형 딜에 대한 참여기회 제공 등 다양한 형태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특화된 IB사업의 추진 필요성도 제시됐다. 김유태 소장은 “CB-IB, CIB(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결합), 기능적 CIB 등 국내 금융시장의 여건에 맞는 IB운영구조 등에 대한 전략적 검토가 수행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