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 스픽스 갈등구조를 깨자] 산업계 흔드는 정책… 대형 이슈상법 ‘첨예한 대립’

입력 2013-09-2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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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일감몰아주기 등 각종 규제에 발목잡힌 형국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한 고개 넘었다 싶으면 더 높은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다. 산업계를 둘러싼 정책 갈등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쉼 없이 이어지고 있다.

상법개정안, 신규 순환출자 금지, 일감 몰아주기 제재 등 경제민주화법을 필두로 통상임금, 노사갈등, 대·중소기업 갈등 등 한국 산업계의 현주소는 수많은 갈등과 대립의 연속이다. 일자리 창출과 저성장 탈출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한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산업계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수많은 정책 이슈는 잠잠해졌다가 또다시 산업계를 휘몰아치고 있다.

지난 정권부터 시작된 갈등의 ‘피로도’는 올해 계속 누적되며 한국 경제를 압박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법 갈등, 찬반 의견 팽팽= 추석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 재계·학계·법조계 인사 등이 모였다. 법무부 주최로 열린 상법개정안 2차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법안의 타당성에 대해 여전히 의견을 달리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소액주주의 권리보호와 기업지배 구조 개선 등을 위해 당초 취지에 맞게 상법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법개정안의 가장 핵심 안건인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대주주 선임의결권 3% 제한’과 관련해 재계가 주장하는 외국계 자본잠식 우려에 대해 김 교수는 “경영감시와 경영권 잠식 우려를 분리시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서 “(상법개정안은) 외부인사 1명을 선임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인데 이것만으로 경영권을 위협한다는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재계는 외국계 펀드 등의 경영권 장악 우려가 있다며 기존의 주장을 고수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외국계 펀드, 연기금이 3% 의결권 제한규정을 이용, 지분을 분산시켜 경영권 장악이 가능하다”며 “대주주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자금을 과도하게 투입할 수 있고, 이로 인해 기업 중장기 성장동력인 연구개발(R&D) 시설투자 및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개정안의 재검토를 촉구했다.

서로의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해 공청회가 열렸지만 양측은 수개월째 동일한 찬반 논리를 앞세우며 팽팽하게 맞섰다. 이 밖에도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일감 몰아주기 제재,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과 유해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 등도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으로 간 통상임금, 해법은? = 경제민주화법 갈등의 한편에는 통상임금 문제로 시끌시끌하다. 지난 5일 대법원에서는 통상임금 관련 심층 토론이 열렸다. 표면상으로는 갑을오토텍이라는 회사의 임금 및 퇴직금 관련 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변론을 듣는 자리였지만, 당일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회 각계각층의 관심이 쏟아졌다.

재계와 노동계는 사활을 걸고 이번 싸움에 임하고 있다. 재계는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면 기업의 정상 경영활동과 투자, 일자리 창출이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동계는 통상임금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따지는 기준이라면서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거부, 대화로 풀기 어려워졌으며 연내 해결은 물 건너간 상태다. 결국 연말쯤 대법원의 관련 판결이 나올 때가지 통상임금 문제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갈등의 또 다른 뇌관 화평법과 화관법 =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과 ‘유해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을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산업계는 지난 5월과 6월 각각 공포된 화평법과 화관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국내 산업의 근간이 흔들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화평법에 대해 산업계는 소량의 신규 화학물질과 R&D 목적의 화학물질까지 등록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모든 화학물질의 유해성 여부를 정부에 보고하는 건 기업 활동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또 화학사고 발생 시 해당 사업장 매출액의 5%를 내야 한다는 조항이 담긴 화관법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지난 12일 전경련 회장단은 “이런 규제들이 기업 현실에 맞지 않고,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 기피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경제의 성장동력 회복을 위해 보다 법 적용을 신중히 추진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신규 화학물질은 등록돼야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을 막을 수 있고, 화관법의 경우 과징금 부과는 고의성과 중과실, 중복 여부, 조치명령 미이행 등의 조건에 해당됐을 때 부과된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해법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 소장은 “대통령이 공약한 내용의 기준이 있으니, 기준을 가지고 어떻게 구체화시킬지,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 제도개선에서 필요한 게 무엇인지 등 이해관계자를 중심으로 논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며 “일단 정부가 나서서 이해관계자들끼리 자체적 의견을 충분히 청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결론을 토대로 제도나 정책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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